롬 8:5-11/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

 

사이렌의 신화

경찰차나 응급차가 달려갈 때 요란하게 울리는 경적을 영어로는 사이렌이라고 합니다. 사이렌이라는 이 영어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이탈리아 반도 서쪽 해안에 사이레눔이라는 섬이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이 섬에는 얼굴은 아름다운 여인이고 몸은 독수리이며 사이렌이라고 불리는 요정이 살았습니다. 이 요정은 배가 섬을 지나갈 때면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에 넋이 나간 선원들이 배를 섬 가까이 몰고 가면 섬 주변에 가득한 암초에  난파되어 모두 목숨을 잃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 사이레눔 섬을 무사히 지나간 영웅이 신화에는 두 사람 등장하는데 첫째는 오디세우스입니다. 그는 사이렌의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듣기를 원해서 꾀를 냅니다. 자신의 선원들에게 자신을 돗대에 꽁꽁 묶도록 하고는 섬을 완전히 지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풀어주지 말도록 하고 선원들은 모두 귀마개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이렌의 노래소리가 들리자 그 소리에 매혹된 오디세우스는 배를 돌리기 위해 선원들에게 자신을 풀라고 미친 듯이 소리치지만 귀마개를 한 선원들은 사이렌의 소리도 오디세우스의 소리도 듣지 못 하여 모두 목숨을 건집니다.

둘째 영웅은 뛰어난 음악가이자 시인인 오르페우스입니다. 그의 방법은 더 고차원적입니다. 그는 사이렌의 소리가 시작되자마자 더 크고 아름다운 소리로 하프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선원들이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듣느라 사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이렌은 오르페우스의 배를 침몰시키는데 실패하자 바다에 몸을 던져 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화는 인간 삶의 진실을 품고 있습니다. 두 영웅이 목숨을 건진 방법이 우리의 영적 삶에 던져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방법은 유혹에 귀를 막음으로 목숨을 건지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삶은 수도원에 들어가든지 아미쉬 타운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속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실패했다는 죄책감만 안고 살아가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오르페우스의 방법은 더 크고 아름다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므로써 유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속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택할 수 있고 택해야만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를 멸망의 암초로 유혹하는 마귀의 속삭임을 이기게 하는 더 크고 아름다운 노래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성령님이신 줄 믿습니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

우리는 로마서 8장의 두 번째 단락을 읽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묘사합니다. (8장 1-2절은 모두 암송하신 줄 믿습니다.) 오늘 단락에서 사도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살아가는 성도가 택할 수 있는 서로 완전히 반되대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누구의 음성을 듣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방식입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따르는 육의 사람이 있고 영을 따르는 영의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입니다. 육의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럼 육신의 일은 무엇이고 영의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산상설교 중에 이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바로 이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우리가 날마다 하는 이 염려야말로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생각입니다. 먹고 입고 마시고 누리고 즐기고 주장하고 소유하고 권세 부리고 인기를 누리는 모든 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럼 늘 어떻게하면 돈 좀 더 벌어볼까만 생각하며 사는 저도 육의 사람입니까? 만약 여러분의 생각이 온통 여기에 묶여 있다면, 예, 맞습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은 육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영의 생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욕구-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를 채우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맡기신 나의 사명은 무엇이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내 삶은 어떠해야 하며 오늘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늘 구하는 것이 영의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십니까? 영의 생각을 하는 영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육의 사람의 비극

5절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육을 생각하여 육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의 사람으로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육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삶인지 말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옛 남자친구를 생각하는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학생은 선생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 편하게 놀 궁리만 하는 일꾼은 상사를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더 잘 먹고 마시고 누리고 사는 것만을 생각하는 이는 비록 몸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7절입니다.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먹고 입고 마시고를 염려하고 욕심내는 것은 그 모든 것은 은혜로 제공하시는 풍요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을 모욕하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부지런히 일하여 늘 먹고 입을 것을 부족함없이 하여 자녀들을 양육하는데도 그들이 밖에만 나가면 걸신 들린 듯 먹어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하고 뭐든 걸레 같은 옷이라도 하나 얻어오려고만 하고 다른 아이들을 부럽다는 소리를 하고 다닌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아이가 걱정되다못해 창피하고 모욕감마저 느끼지 않겠습니까? 육신의 염려와 욕심으로 가득한 생각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이런 생각에 몰두하는 이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려고도 않지만 하려고 해도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더 벌고 더 소유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한데 의와 거룩과 경건과 형제애와 긍휼과 겸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마치 자석의 N극과 N극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육신의 생각의 종말은 무엇입니까?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을 품고 육의 사람으로 살아간 결과 도달하는 곳은 결국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우리의 영에서 밀어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아갑니다. 결국 하나님과 분리된 채 영원을 맞이합니다. 그것이 곧 영의 사망이며, 멸망이요, 지옥입니다.

 

평안의 길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참 평안을 누리지 못 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생명과 평안은 영의 생각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이들이 누리는 것이 생명이며, 평안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육의 생각만 하고 있으면 결코 참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평안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경제위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만 호황이 되면 이런 불안이 극복되고 평안하고 행복할 줄 압니다. 경제위기라고 해도 우리가 누리는 삶의 수준은 여전히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 국민들보다 훨씬 풍요롭습니다. 최악의 경제상황이라고 해도 우리는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기의 사람들보다 훨씬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보다 가난한 현 인류의 대부분과 지난 역사의 모든 인류들은 도대체 어떻게 평안을 누리고 살았단 말입니까? 평안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영의 생각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과 평안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에 맺히는 열매가 평안입니다. 이런 평안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영의 사람의 행복

그러면 우리가 영으로 산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9절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우리들의 소속이 어디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속에 거하시느냐의 여부입니다. 성령님이 거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법을 즐겁게 순종하고 평안을 누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을 소유합니다. 10절입니다.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우리의 영은 소멸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영의 상태로 계속 머물지 않습니다. 영은 무엇을 경험할 것입니까? 11절입니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생명을 가진 씨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듯이 생명을 소유한 성도의 영은 그 생명의 능력으로 마침내 영광스러운 부활의 새 몸을 입게 됩니다. 보십시오. 영의 생각을 구하는 영의 사람이 누리는 복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록키산맥의 고지대에 자리잡은 작은 샘이 있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물이 동과 서로 갈라지는 지점이 있다고 합니다. 동으로 흐르는 물은 바우리버를 이루어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고 서로 흐르는 물은 킥킹호스리버를 타고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처음에는 섞여내려오던 물줄기가 어느 순간 갈라지더니 완전히 반대쪽의 두 바다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섞여 살 때는 육의 사람도 영의 사람도 겉보기에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덧 살과 같이 빠른 인생의 막이 내리고 나면 영원히 다른 운명으로 갈라지고야 맙니다. 그 끝은 사망과 생명으로 서로 건널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영원한 이별입니다. 그래서 C.S.루이스는 이 문제를 다룬 그의 책 제목을 The Great Divorce- 위대한 결별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위대한 결별의 순간에 우리는 생명의 나라에 있게 될까요, 멸망의 나라에 있게 될까요? 한 분도 남김없이 생명의 나라 안에 다 만나뵙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