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1-2/삶이 예배가 되는 성도

161113 주일설교

 

새로운 삶 

2주 전에 들려드린 한동대 김영길 총장의 회심 이야기가 소개된 책 갈대상자에는 그 후 김총장의 변화되어가는 삶의 이야기도 소개됩니다. 김영길 총장은 술을 몹시 사랑하는 애주가였다고 합니다. 어찌나 술을 좋아했던지 거실 한 쪽에 미니 바를 설치해 두고는 칵테일 만드는 법을 소개한 책, 계량기 등과 각종 술을 가져다두고 즐겼다는 것입니다. 아내인 김영애 사모는 남편의 회심 후 그 술을 사랑하는 남편의 습관이 마음에 걸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술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를 들은 남편은 화를 내면서 ‘내가 언제 술 마시고 실수한 적이 있느냐, 디모데서를 보면 바울도 디모데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느냐’며 다시는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쩔수없이 몰래 기도하던 중 친구가 가져다 준 한경직 목사의 설교테이프를 듣고 옳다, 이거다 싶어서 남편이 듣도록 거실에 틀어두었습니다. 설교제목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있던 남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마침내 벌떡 일어나 홈바로 달려가서는 벽장을 가득 채운 술병을 하나씩 꺼내 싱크대에 거꾸로 꽂아 쏟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김영애 사모는 아까운 마음에 ‘여보, 마시던 것만 버리고 새 것은 그냥 두세요. 초대받을 때 들고가게요.’하고 말리니 ‘내가 꺼리는 것을 어떻게 다른 이에게 주겠소.’라며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귀국 후 한국의 오랜 술친구들을 만나면 미국 생활로 사람을 버렸다고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김총장은 친구들을 실망시킬지언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며 그 후 술을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총장의 회심이 진짜인 줄로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왜일까요? 회심 후의 삶이 옛 습관을 끊어버리고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삶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비로 구원을 얻은 모든 이들에게서 마땅히 기대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결혼한 젊은이에게서 옛 여자친구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아내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 예배

다시 로마서로 돌아왔습니다. 로마서를 크게 전반부의 교리와 후반부의 실천으로 나누면 지금까지 살펴 본 1-11장이 교리의 선포, 오늘부터 살펴볼 12-16장이 실천전 교훈이 됩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전반부라면,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후반부라는 말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롬 1:17이 전반부 교리선포의 핵심구절이라면 오늘 본문 12장 1-2절은 후반부 실천적 교훈의 핵심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이해는 후반부 전체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전반부에서 우리는 우리 죄인들의 구원이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오묘한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자격없는 죄인이었던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겸손한 믿음으로 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된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한한 자비를 받은 것에 걸맞는 새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새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한마디로 예배하는 삶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이 모든 구원의 자비를 입은 성도들은 마땅히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신앙의 꽃입니다. 예배는 예배인데 영적 예배를 드리라고 합니다. 영적 예배의 반대는 육적 예배이겠지요. 예배는 예배인데 영적인 예배가 있고 육적인 예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무엇이 육적인 예배입니까? 그것은 거룩한 삶의 열매가 없는 이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 생활에는 아무런 회개의 열매도, 거룩함의 열매도 없을 때 그가 드리는 예배는 아무리 분위기 좋은 곳에서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의 선율에 맞춰 멋진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이라해도 육적 예배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본문 말씀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의 몸은 곧 성도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거룩한 삶의 열매를 하나님께 제물로 올려 드리는 이의 예배가 곧 최고의 예배가 되고 그것이 곧 영적인 예배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이런 거룩한 삶의 열매가 없는 이가 드리는 예배는 곧 죽은 제물을 드리는 육적인 예배라는 말입니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헌금시간에 여러분은 준비한 돈을 헌금함에 넣으시죠? 거룩한 삶이 없다면 거기에 여러분의 전 재산을 집어넣어도 주님은 받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그 돈 말고 배우자를 아끼는 삶,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하는 삶, 직장동료와 이웃과 화목하게 사는 삶 또한 이 사회에 기여하는 섬김의 삶을 헌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훈을 예수님이 이렇게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마 5: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만약 형제를 미워하거나 착취하거나 이용하거나 억압하는 어떤 죄라도 있거든 그것을 회개하여야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비로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영적 예배가 되고 그 때 우리의 회개의 삶이야말로 최고의 산 제물이 된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최고의 산 제물이요, 최고의 영적 예배입니다. 신약 성도의 진짜 예배, 영적 예배는 그러므로 예배당에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가정에서 드리고 일터에서 드리고 교회 밖의 일상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룩한 삶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올 때 그것은 죽은 제물이 아닌 산 제물이 되고 그 산 제물을 드리는 예배자의 예배가 곧 영적 예배가 됩니다. 우리의 매일매일의 일상은 곧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물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임을 깨달으시길 축복드립니다.

흔히 우리는 삶은 비록 죄악되지만 주일에 예배는 거룩하게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육적인 예배를 벗어나지 못 한 것입니다. 일상의 삶이 거룩한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우리의 예배는 영적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녀들이 이런 영적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를 들어보십시오.

(요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서의 거룩한 삶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올려드림으로 주님이 기뻐받으시는 영적 예배를 드리실 수 있기를 축복드립니다.

 

새로운 마음

자, 그럼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구절의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모든 참된 변화는 이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잠언은 이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새로운 삶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자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새롭게 해서 어떤 변화를 받습니까? 다시 2절을 보십시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마음은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세대의 풍조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거스릅니다. 이 세대는 정욕과 탐욕과 허영이라는 모든 헛된 욕망의 파도에 휩쓸려 다니는 배와 같습니다. 닻이 끊어진 배가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표류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진리의 닻이 끊어진 인생은 어디가 목적지인 줄 모르고 그저 욕망의 파도에 휩쓸려 다닐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본받을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가 그 분의 마음을 본받으면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변화를 경험하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 했던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 뜻은 선하며 기뻐하실만한 것이며 온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뜻을 좇아 살아가게 되면 비로소 거룩한 새 삶이 시작됩니다.

그 복되고 아름다운 새 삶을 로마서 후반부는 우리에게 소개해 줍니다. 이 새 삶의 구석구석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로마서 여행에 동행하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의 삶이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새 삶으로 변화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