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3-8/그리스도인의 봉사생활

161127 주일설교 대강절1주

 신비한 몸

할렐루야!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평화의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임재가 충만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우리 손이 바늘에 찔리거나 칼에 베이면 손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납니다. 다른 것은 없을까요? 나병 즉 한센씨병의 원인을 밝혀내어 나병치료의 전기를 마련한 폴 브랜드 박사는 그의 책 ‘오묘한 육체’에서 이 때 우리 몸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는데 마치 교통사고 처리과정과 흡사합니다. 먼저 피가 난다는 것은 피부와 더불어 피부 아래를 흐르는 모세혈관이 손상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손상된 혈관벽을 중심으로 주변의 근육세포들이 수축하여 댐을 쌓아 ‘피같은’ 피의 손실의 최대한 막습니다. 다음으로 피속을 떠다니던 혈소판은 자신의 몸을 터뜨려 피를 응고시킴으로써 손상된 피부에 피딱지를 만들어서 역시 피의 손실을 막아냅니다. 상처가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근육세포와 혈소판의 수고와 희생으로 몸 밖으로 흘러나오던 피는 점점 줄어듭니다. 동시에 대식세포라 불리는 청소를 담당하는 세포들이 나타나 이 과정에서 죽은 세포조각들을 말끔히 청소합니다. 곧이어 재생세포들이 피해지역 주변에 모여 죽은 세포들을 재생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상처를 통해 병균이 침투했을 경우 한 가지 일이 더 일어납니다. 평소에는 바다위를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정처없이 떠돌던 백혈구들이 마치 토끼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맹렬한 속도로 직선코스로 모여듭니다. 이들은 병균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고 몸 안에 품고 있던 폭탄을 터뜨려 가미가제식으로 병균을 죽이고 자신도 죽습니다. 마침내 전투가 끝나면 백혈구들과 병균들의 주검들만 남고 살아남은 백혈구들은 또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전투를 기다리며 유유히 혈관의 강을 따라 흩어져 갑니다. 그 주검들은 혈관을 타고 신장으로 가서 걸려져 몸 밖으로 배설됩니다.

자, 이 모든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온 몸의 세포들이 상처를 감지한 뇌의 명령에 반응하고 또 창조주가 각 세포 안에 새겨놓으신 DNA의 지휘를 따라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일어납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전져 주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몸이 얼마나 정교하고 훌륭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지으신 하나님의 놀랍고 오묘한 솜씨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또 하나의 교훈은 우리의 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역시 이와같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놀랍고도 오묘한 하나님의 손길로 창조된 위대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번 할렐루야!

 

겸손

오늘 우리는 다시 로마서로 돌아왔습니다. 전에 설명드렸듯이 로마서는 12장부터 성도의 실천적 삶을 가르칩니다. 1-2절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삶을 산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바울 사도는 선포하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사는 것이 삶을 산제물로 드리는 것이냐는 문제를 설명할 차례인데, 바울이 첫 번째 예로 든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바 공동체적 삶,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봉사의 삶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의 봉사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살아있는 제물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먼저 바울은 교회가 무엇이라고 가르칩니까?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롬 12: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이 몸이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대로 건강하고 오묘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몸을 이룬 성도들의 겸손한 봉사가 필요합니다. 봉사는 봉사인데 겸손함으로 하는 봉사라는 말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것은 교회 내에서 봉사를 하는 성도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공동번역개정판을 보면 후반부를 이렇게 번역합니다.

(롬 12:3)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 성도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역할이 있습니다. 겸손히 자신을 인정하고 맡겨진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그리스도의 몸은 자라나고 온전해집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나지금이나 교회 안에는 그 겸손의 덕목을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자신의 은사를 지나치게 크게 포장하고 자신의 역할이 아닌 것을 하려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교회의 질서가 깨어지고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기보다 병이 듭니다.

이것은 마치 손에 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뇌가 각 세포에게 명령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상처를 잘 치료하려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각각의 세포가 자신의 역할을 겸손하고 충성스럽게 해내야 합니다. 만약 이 뇌의 명령에 순종치 않고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거부하는 세포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세포는 뇌에게 반항하는 자신과 같은 세포를 복제해내어 소위 몸 안의 반란군을 만들어냅니다. 그 반란군 세포는 몸의 정상적인 세포들과 싸우고 몸의 질서를 깨뜨려 몸을 괴롭게 만듭니다. 그 반란군 세포의 덩어리를 우리는 Cancer 즉 암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이 암이 자라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겸손히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이 성도들 여러분 안에 있기를 축복드립니다.

 

충성

바로 이 겸손에서 충성이 나옵니다. 6절부터 8절까지 소개되는 예는 겸손한 성도들이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예입니다. 먼저 6절을 보십시오.

(롬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가장 먼저 예언하는 이의 충성을 강조합니다. 예언은 미래일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그 백성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예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그것을 성도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예언은 계시된 말씀인 성경을 설교자들이 해석하여 선포하는 설교를 가리킵니다. ‘믿음의 분수대로’라는 표현은 ‘믿음과 일치하게’라는 뜻으로 즉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일치된 설교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설교자가 자신의 욕심때문에 인간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계시에 섞거나 게으름과 무책임으로 정확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만한 설교자들이 이 가르침을 외면하여서 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고 혹은 표절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겸손한 설교자는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성실하게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합니다. 또 다른 섬김의 예를 보십시오.

(롬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 12: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섬기는 일은 아마도 사도행전 6장에 등장하는 일곱 집사에게 맡겨진 빈자에 대한 구제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가르치는 것은 설교자 외에 초대교회에 있었던 평신도 교사들을 가리킨다고 생각되는데 오늘날 현대교회에도 이런 가르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주일학교 교사, 구역섬김이와 도우미, 일대일 양육자, 커피브레이크 리더 등이 이런 평신도 교사들입니다. 아주 귀한 직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로하고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자는 특정한 직분이라기보다는 초대교회에서 그 은사로 인해 두드러진 역할을 맡은 이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즘에도 교우들을 보면 이런 은사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다스리는 자는 오늘날 교회의 당회의 역할과 유사합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관리가 백성을 다스리듯 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들의 건강을 돌보듯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돌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장로교 장로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는 장로가 마치 세상의 직장 상사들이 하듯이 교인들에게 일을 시키고 결제하는 직분인 줄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으나 이는 심각한 오해입니다. 장로의 역할은 교인들의 영성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 구역조직은 교구로 묶여있고 교구의 섬김이를 장로님들이 맡으십니다. 왜입니까? 구역식구들의 영혼을 구역섬김이가 돌보듯 교구식구들의 영혼을 교구섬김이가 돌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모든 성도가 충성스럽게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사도 바울은 권합니다. 이런 충성이 없는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겸손이 없는 세포가 암세포가 되듯 충성이 없는 세포는 죽은 세포가 되어 몸에 큰 부담이 됩니다. 간이 몸의 독소를 걸러내지 못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못 하면 어떻게 될까요? 뼈가 부실해서 몸을 지탱하지 못 하면 어떻게 됩니까? 혈관이 막혀서 피를 흘려보내지 못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심각하게 건강을 잃고 심지어 목숨마저 위협을 받습니다.

모든 세포가 제 역할을 할 때 그 몸은 건강하고 최고의 기능을 발휘합니다. 마이클 조던처럼 높이 점프하고 김연아처럼 우아한 스케이팅을 하고 김현수처럼 그 빠른 공을 정확히 쳐냅니다. 이렇듯 모든 성도가 각자의 영역에서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길 때 우리 몸이 그러하듯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건강하게 유지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겸손과 충성의 봉사는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산 제물이 되어 우리의 예배가 영적 예배, 참된 예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충성으로 교회를 섬기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