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과 성공 (사사기 14:1-9)

  1. 보이는것이 다가 아니다.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레 5:2)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것들이 네게 부정하니라” (레11: 27-28)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1. 결과가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개역개정)

4 하지만 그의 부모는,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임을,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치실 계기를 삼으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인 줄 알지 못하였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성공이 다가 아니라 거룩이 중요하다.

 

결과가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 성공이 거룩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  거룩과 성공 (사사기 14:1-9)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5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몇 해 전, 저는 뉴스를 통해서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소식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 소식은 서부 지역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하시던 목사님 한 분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한인교회가 나아가야할 한가지 좋은 롤모델을 제시해주었던 그런 사역을 하셨던 분이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참 귀하게 쓰시는 목사님이라고 생각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접한그 소식은 안타깝게도 그 목사님께서 스캔들에 휘말려서 갑자기 교회에서 사임을 하셨다는 소식였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 목사님이 하셨던 사역은 분명 의미있는 사역이었고 좋은 열매를 맺는 사역이었습니다. 목사님의 개인적인 잘못으로 인해서 폄하되어야 할 사역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고 그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 쓰임받으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목사님이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과 그 목사님 개인이 하나님 앞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은 단지 어떤 한 목사님에 대한 실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더라도 하나님께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인한충격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하나님의 종으로 산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은 죄에 빠져 살면서 사람들의 눈에는 신실한 것처럼 꾸미며 살수도 있고 그 거짓에 나 또한 속아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깨달음의 충격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경고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삼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삼손은 아마도 모든 사사 중에 가장 유명한 사사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삼손은 홀홀단신으로40년간의 블레셋 민족의 압제에서 그들을 구원한 슈퍼 히어로 였습니다. 슈퍼 히어로라는 말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가 가지고 있던 초인적인 능력은 성경에 나오는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명성과는 달리, 또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사실과는 관계 없이 그 개인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데없었습니다. 그가 블레셋 민족들의 포로가 되어 눈이 뽑히고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가 자폭 공격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의 삶은 비참한 죄인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앞서 말씀드린 목사님과 같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했지만 그것이 그의 삶을 구원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삼손의 삶은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몇가지 교훈을 줍니다. 오늘 우리는 그 말씀을 함께 나눠보았으면 합니다.

 

  1. 보이는것이 다가 아니다.

삼손의 삶을 통해서 또 우리가 읽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은 교훈은 먼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당황하지 마십시오.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잊고 지나쳐 갑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마지막 부분에서 삼손은 자기 부모에게 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삼손의 부모는 결혼 문제로 부모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던 삼손이 이런 행동을 하자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가 고집이 쎄서 그렇지 아주 막되먹은 녀석은 아니야. 이렇게 부모를생각하는 것 봐. 아직 아이 같은 면은 있지만 그래도 기특하고 사랑스럽지 않나?” 하지만 삼손이 그의 부모들에게 말하지 않고 숨겼던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꿀이 바로 그가 죽인 사자의 사체로 부터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것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정결법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결법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정한 것을 멀리하라는 것을 명령하고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게 구별 되길 바라셨고, 위생적인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정결법의 규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레 5:2)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것들이 네게 부정하니라” (레11: 27-28)
이 말씀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사자의 사체는 부정한 것이고 가까이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정한 사자의 사체로부터 나온 꿀 역시 부정한 것입니다. 삼손은 게다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정해진 사람으로써 나실인은 더욱 엄격한 정결법의 적용을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정한 것은 절대로 먹을 수 안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사자의 사체로부터 나온 꿀을 자신도 먹었을 뿐 아니라 그의 부모에게 까지 가져가 먹게했습니다. 자신도 부정해졌고, 자신의 부모까지 부정하게 만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효도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효를 범한 것입니다.

도대체 삼손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한 것입니까? 삼손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쉽게 빠지는 착각,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을 한 것입니다. 눈으로 보기에 그 꿀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하지도 않았고 맛이 이상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분명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꿀은 시체에서 나온 부정한 꿀이라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꿀이 그와 그의 부모님을 부정하게 만드는 사실이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의 부모는 그 꿀을 먹음으로써 부정하여졌습니다.그런데도 삼손은 자신이 부모에게 그 꿀이 사자의 시체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삼손의 삶이 비참한 삶이 된 이유는 바로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는 삶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삼손의 삶에서의 모든 불행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됩니까?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그 불행은 삼손이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삼손이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하게된 이유가 나옵니다. 1절과 2절입니다.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이 말씀에서 삼손은 왜 이 블레셋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유독 강조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한 여자를 보고, 내가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보았다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삼손이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는 눈으로 보이는 그 여자의 외모만을 보고 사랑에 빠졌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했던 이러한 착각은 그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의 방향성조차도 이 착각에 휘둘렸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눈에 드러나는 업적, 그의 놀라운 힘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대적인 블레셋을 치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드러나지 않는 그 자신의 거룩을 지키는 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일에 대해서는아무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은 우리도 너무나 쉽게 빠지는 착각입니다. 우리 역시 삼손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는 것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리의 모습에는 큰 관심을 가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춧가루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꼭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지 않았나 확인하시지요. 자신의 치아 상태는 식사 후에 그렇게 매번 체크하지만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매번 체크하는 사람은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약속이 있을 때 우리는 거울을 보고 우리 얼굴에 무엇이 묻지 않았는지 화장은 잘되었는지, 옷은 바르게 입었는지를 꼭 확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그 사람을 영적으로대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외면이 준비안된 채로 밖에 나가면 큰 일이 날 것 같지만 영적으로 준비안된채로 나가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겉모습을 치장하는데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씁니다. 쇼핑을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고 마사지를 받고 팩을 하고 피부과에 가는데, 우리의 외면을 꾸미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 합니까?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영을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 묵상을 위한 30분의 시간도 아까워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을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죄의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와 다른 이들의 눈에 드러나는 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죄에 대해서는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하지 못할 부끄러운 행동을 우리는 혼자 있을 때에는 거리낌없이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다면 그 행동이 부끄럽지 않은 행동입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행동이라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보건 보지 않건 간에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또, 죄를 지어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죄를 지어도 겉으로 드러나 밝혀지기 전까지 그 죄의 문제를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해도, 과속을 해도, 컨닝을 해도, 탈세를 해도, 바람을 펴도 약간의 불법을 저질러도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걸리지 않아도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과속은 과속이고 컨닝은 컨닝이며 탈세는 탈세고 외도는 외도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꾸중하시는 듯한 어떤 큰 일이 우리 앞에 벌어지기 전까지 우리의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 생기면, 사고라도 나고 병이라도 걸려야, 그제서야 비로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게 있는건 아닌지를 돌아보고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것이 죄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지 않은 것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죄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이 전부라는 착각은 우리를 영혼을 심각하게 병들게 만들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믿고 그것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1. 결과가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두번째로 삼손의 삶을 통해서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결과가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빠지는 착각입니다. 우리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결과는 과정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것을, 결과가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제 눈길을 사로잡은 말씀은 4절 말씀이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으로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개역개정 번역에서는 마치 삼손이 먼저 블레셋 사람을 치기 위해서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을 계획한 것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 좋은 번역은 아닙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의 의미를 더 잘 살린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4 하지만 그의 부모는,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임을,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치실 계기를 삼으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인 줄 알지 못하였다…

이 일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을 치려 계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삼손은 자기 멋대로 일을 벌이고 다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삼손을 통해서도 일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삼손은 이 결혼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서 블레셋 사람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밭과 과수원에 불을 지르고 1000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들을 학살합니다. 그외에도 삼손이 행했던 여러 망나니 짓은 결국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들이 당했던 어려움을 되갚아 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서 삼손은 끝까지 큰 발전 없이 망나니처럼 살았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 블레셋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였습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블레셋 민족을 벌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심지어 삼손이 망나니 짓 끝에 힘을 잃고 블레셋 민족들에게 잡혀 눈이 뽑히고 노예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상황이 우상을 섬기던 블레셋 신전을 무너뜨리고 거기에 모여있던 블레셋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성경은 그가 죽을 때에 함께 죽었던 블레셋 민족들의 수가 그가 살아서 죽인 수보다 더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내 삼손의 삶과 죽음을온전히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삼손의 연약함과 실수를 통해서 까지 하나님은 일하신 것입니다.

언뜻 듣기에 이 실수와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씀은 참 은혜로운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어떤 면에서 또한 매우 두려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삼손을 통하여, 삼손의 실수와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일하셨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나타났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실수와 약함은 그대로 그에게 있었고 그 자신에게서는 어떠한 성장도 없었으며, 결국 그는 개인적으로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와 약함을 통하여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이뤄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가룟 유다와 같은 인물을 통해서도, 그의 악한 의도와 욕심을 따르는 행동을 통해서도 결국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들, 좋은 결과들은 우리가 아무리 개판을 쳐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 가운데 우리는 약함과 죄는그대로 있고 우리는 성장하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버려지고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 좋은 결과들이 우리 자신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일이 될지라도 우리 자신에게는 비참한 결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의 결과는 우리가 영적으로 바로 서있는 지를 말해주는 척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공이 거룩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와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좋은 결과가 나타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좋은 결과들이 나타날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게 될 때, 중요한 시험에 통과하였을 때, 좋은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회사에서인정을 받게 될 때, 내가 참여하고 진행하는 일들이 잘 굴러갈 때, 성공과 성취 앞에서 우리는 그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 공부 안해도 좋은 성적이 나오면 공부 안했다는 사실은 마치 없었던 일이고 내가 실력을 쌓지 못한 것은 없었던 일이고 그 정도면 할만큼 했지 아니면 내가 정말 똑똑하긴 하구나 하고 착각을 합니다.  특별히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맡은 일들이 잘 굴러가고 인정을 받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아니면 그정도면 꽤 노력을 많이 한 것인냥착각을 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일이 잘 풀리고 우리의 삶 속에 문제가 없을 때 우리는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이 안전한 것인양 착각을 합니다. 말씀 따라 살아가지 않아도 우리가 세상 속에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면 말씀은 그냥 하나의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굳이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도, 예배 인원이 늘고, 헌금액이 늘어나면, 우리 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교회라고 건강한 교회라고 착각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성공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해 낼 때 우리는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나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도와주시고 있는 것을 보니 지금 나의 신앙생활에는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구나하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결과는 결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망나니의 삶을 살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만드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성공과 성취는 하나님의 영광을나타내기 위하여 쓰여질 뿐일 수도 있으면 우리의 삶의 성공과 성취가 있다는 것이 우리가 바른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교훈은 개인적으로 저에게 큰 경고를 준 말씀입니다. 부족한 점과 연약한 부분이 많은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항상 부족한 부분을 느끼면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당연시 하면서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말씀 앞에서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은 그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하면서도 나의 영적인 상태나 신앙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좋은 결과가 결코 나 개인의 구원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씀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을 받게 하고나 자신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저에게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이방인 선교의 선구자요, 수많은 신약성경의 저자로써 놀라운 업적을 남겼던 바울조차도 이러한 두려움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아무리 자신이 이방사람들과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안 바울은 두려움 가운데 자신의 몸을 쳐 하나님께 복종하게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 경고의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 때, 내 삶의 성공이 있을 때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 마시고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우리의 거룩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온 천하를 얻는다고 해도 우리의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 속에,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착각 속에 살면 우리는 남들 보기에는 성공하고 그래서 행복해보이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온천하를 얻는 성공이 있다고해도 정작 우리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한 인생일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 거룩이 중요하다. 함께 따라해보실까요? 결과가 좋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공이 거룩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함께 따라하겠습니다.

거룩이 전부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삶은 거룩한 삶을 살았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로 판단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가운데 있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로 판단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겉모습이나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 우리 내면의 거룩함,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가운데 살고 있는지로 우리는 판단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겉모습보다 우리의 내면과 영적인 상태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결과보다 그 과정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