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4-15)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26:28)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15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24절)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롬 5:19)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순종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눅 14:16-24)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서론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란 쉽게 말해서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 국민이 주인인 사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실행하는데 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왕이나 대통령처럼 특정한 몇몇 사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이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아니, 이 생각은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중요한 관념 중에 하나입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야. 내 삶의 결정권은 내가 가지고 있어.  이 생각은 심지어 이 생각을 반대하는 어떤 생각이나 관념이 등장할 때 그것을 가차 없이 공격하게 만들 만큼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고 할 때 그것은 사실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 복음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 믿음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을 통해서 나의 죄의 값을 지불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나를 구원하신 나의 주님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 주인님이시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의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며, 나의 삶에 결정권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를 분명히 안다면 분명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경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다른 좋은 말로 꾸밀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복음이 정말로 이것 입니까? 그렇습니다. 한번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찾아볼까요? 그 복음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4-15절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4-15)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의 복음은 바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좀 풀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고, 하나님의 통치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여라”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입니까? 이제까지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지 않았던 것, 하나님의 나라의 법 가운데 살지 않았던 것,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지 않았던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인된 삶을 살지 않고 내가 주인된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가까이 왔으니 그것을 받아들여라, 내가 나의 주인 되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 원래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왕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불순종함으로 그 관계를 깨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이라는 관계를 맺었지만 그 관계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으로써 그 관계는 깨져버렸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인간의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기 시작하셨고, 그것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서 하셨던 일은 다시금 그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자신의 죽으심의 의미를 제자들과 나누신 성만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26:28)

풀어서 설명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많은 사람의 죄를 씻기 위하여 흘리는 속죄의 피며 또한 동시에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관계를 세우는 언약의 피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죄는 깨끗하여 지고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시금 새로운 언약의 관계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통치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믿고 그 복음에 응답하여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삶, 하나님의 백성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삶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삶,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과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필수지만 순종은 선택이 아닙니다. 아니, 애초 부터 이 두가지는 이렇게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는 바로 이 순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서론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결코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믿기만 하고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삶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본론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말씀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이러한 복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믿음과 순종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관련된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을 읽으면 우리가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15절)

예수님이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시게 된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던 사람 중 하나가 갑자기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를 어떤 사람이 베푼 큰 잔치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이 사람은 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라고 하신 초청 이것이 바로 복음이지요. 이 복음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전부터 전하여진 것입니다. 바로 구약시대에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하여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잔치할 시각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와 왔을 때 이 사람은 다시 종을 보내어 그 청하였던 사람들을 부릅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오십시오 라고 부릅니다. 그 부름은 마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외쳤던 요한이나 예수님의 외침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래 초청을 받았던 사람들은 이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이 초청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라는 이 초청에 대해서 원래 초청을 받았던 사람들, 구약 성경을 받았던 사람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사람들은 이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부름에 응하지 않았던 이유, 순종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에 나오는 그 이유를 살펴보면 그 이유들은 사실 전혀 이해못할 만한 이유라든가, 정말 나쁜 이유,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합리적인 이유, 그럴만한 이유, 우리가 들었다면, 그래, 그 정도면 못 올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밭을 사서 나가 보아야 하겠다,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까 시험해봐야 겠다. 장가를 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 얼마나 그럴 듯한 이유입니까? 그들은 무슨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 강도짓을 하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하기 위해서 이 초청을 거부하고 이 초청에 불응하고, 불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취했던 행동이 윤리적으로 나쁜 것이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했던 행동이 불순종이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 중요한 초청에 불순종했던 것 자체가 이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결말은 무엇입니까? 21절 말씀에서는 먼저, 주인이 그들에게 노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4절에서 주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24절)

그들은 결국 그 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맛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 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맛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라고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그 초청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라는 초청, 하나님의 통치 안에 살라는 초청이었습니다. 그 초청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초청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지 못하는, 하나님의 통치, 다스리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불순종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입니다. 불순종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시키신 그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나의 구주라는 사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은 그렇기 때문에 또한 불신앙입니다.

무엇보다도 불순종이야말로 죄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는 죄라고 하면 어떤 윤리적인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들, 한 마디로 나쁜 짓 이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이렇게 윤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때 사실 그 기준은 매우 애매모호 합니다. 윤리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 같지만 사회와 문화와 상황에 따라서 완전히 다를 수 있고  심지어 가정과 개인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기준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윤리적,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첫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일이 왜 그렇게 죽을만한 죄입니까? 윤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선악과를 따먹은 일 자체는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남의 것을 훔친 것도 아니고, 남을 해친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미워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죄였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던 불신앙이었던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던 불순종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말씀에서 바울은 이 아담의 범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롬 5:19)

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죄인되었다고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의 죄는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내가 나의 주인되고자 하는 것,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그런데 이 불순종을 너무나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여러가지 그럴듯한 변명과 핑계와 이유를 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은 이렇지만 내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말씀은 그렇지만 나는 나의 생계와 가정이 있습니다. 말씀은 그렇지만 내 상황은 그렇지 않은데요. 말씀은 그렇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요. 합리적이고 이해할 만한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러한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 큰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새로 산 밭에 가봐야 해서, 소를 시험해봐야해서, 결혼했기 때문에, 라는 핑계를 대고 그 초청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와 변명과 핑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어떠한 핑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죄입니다. 우린 그것을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여러가지 선택지 중의 하나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한번 들어보고 괜찮은 것 같으면 순종해도 되고 아니면 무시해도 되는 것일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잔치에 참여하지 못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함 이었습니다. 그에 반해서 잔치에 참여한 사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있던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원래 초청을 받았던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았던 사람입니까? 아니요. 오히려 이들은 그들보다 더 못한 이들이이었습니다. 초청 받을 만한 어떤 좋은 점이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청받지 못할 만한 이유가 많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초청을 받아서 큰 잔치에 참여하게 된 이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그 초청에 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초청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내려놓고 일단 종을 따라서 잔치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순종의 결과입니다. 순종의 열매입니다. 순종하는 자가 경험하게 될 복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결론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한가지 핑계가 남아있습니다. 순종하고 싶으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순종할 수 있습니까? 완전한 순종을 이루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 말씀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 자아를 죽고 더 이상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온전히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으로 살아감으로써 온전한 순종을 이룰 수 있는 저와 어려분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