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6-17/멈추지 않는 종교개혁

171029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

 

명성교회의 세습강행

지난 화요일인 24일 한국교회 언론들은 일제히 명성교회의 세습강행을 보도했습니다.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는 진작에 세습금지법을 통과시키고 서울동남노회는 명성교회 담임목사인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의 청빙건을 반려함으로써 대표적인 대형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의 세습은 좌절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노회원들을 동원하여 불법적인 반쪽 짜리 노회를 열어 청빙건을 허락받았습니다. 교단 내 여러 목회자들과 신학교 학생, 교수회와 시민단체 그리고 교계신문들은 일제히 명성교회 세습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세상에서도 비판받는 세습이 거룩한 교회에서 그것도 교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명성교회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에 탄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법세습의 후폭풍으로 교단법정과 세상법정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우리 교회가 속한 해외한인장로회 Presbyterian Church of NJ의 뿌리입니다. 이민 초기 예장 통합측 목회자들이 미국에서 세운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 교단을 세웠습니다.

명성교회 사태는 5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종교개혁주일을 기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개혁되지 않으면 맛 잃은 소금이 되어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오늘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지금부터 500년 전인 1517년 독일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의 성채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것을 계기로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루터가 한 일은 요즘으로 치자면 항의 대자보를 붙인 것입니다. 같은 기독교 신앙이라고는 하지만 카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이 종교개혁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우리 개신교도들은 왜 종교개혁을 기념합니까? 종교개혁이 우리 개신교 신앙을 탄생시킨 사건이자 개신교 신앙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이천 년이고 개신교회의 역사는 오백 년입니다. 우리는 지금 2천 년을 이어온 교회의 역사 그리고 5백 년을 이어온 개신교 역사의 현장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의 뿌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기에 오늘은 먼저 교회의 역사와 개신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할까 합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인 기원 후 28년 경 로마제국의 변방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나면서 교회가 태어납니다. 예수님의 선교명령에 순종한 사도들을 중심으로 교회는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가고 4세기 경에는 마침내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11세기에는 콘스탄티노플과 로마를 중심으로 각각 발전하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됩니다. 동방교회는 오늘날 동방정교회로 발전하고 서방교회는 오늘날의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회의 뿌리가 됩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중세로 접어들면서 유럽인들의 종교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회는 그러나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기보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합니다.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교회는 성직자의 호화생활과 성적 부패,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 등을 통한 부의 축적, 과중한 교회세의 부과와 권력다툼으로 민중들로부터 극심한 원망을 사고 교회 내에조차도 개혁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옵니다. 이런 어둠 속에서 위클리프와 후스 같은 개혁자들이 길을 닦고 루터, 쯔빙글리 그리고 칼뱅 같은 이들이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게 되었습니다. 16세기 유럽사회는 종교개혁을 계기로 교황을 지지하는 이들과 개혁자들을 따르는 이들로 나뉘는데 교황을 따르는 이들이 오늘날의 로만카톨릭으로, 개혁자들을 따르는 이들이 개신교로 발전합니다.

로만카톨릭은 개혁자들을 저항하는 무리라는 뜻으로 Protestant라고 부르는데 이 말이 오늘날 개신교를 부르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참된 개신교회는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의에 저항하며 진리를 높이 드는 교회여야만 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우리가 높이 들어야 할 진리의 횃불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여전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종교개혁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경으로

첫째, Sola Scriptura 라틴어로 오직 성경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신앙과 교회의 최고의 권위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중세교회는 교황과 주교회의의 권위를 성경 위에 두고 교회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성경에 없는 교리를 만들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은 라틴어로만 읽도록 하여 신부들이 성경 읽기를 독점하고 평신도들이 성경에 접근하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섬김으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민중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개혁자들은 성경이 교회의 최고의 권위임을 천명하고 교회가 권력자가 아닌 성경에 의해 다스림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루터는 독일국민들이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쯔빙글리와 칼뱅은 성경을 역사적 배경과 문법을 고려하여 해석, 설교함으로써 성경 원래의 가르침을 드러내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결과 개신교회는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카톨릭과 정교회가 상대적으로 예전 중심이라면 개신교는 말씀 중심입니다. 카톨릭과 정교회의 미사는 예식이 강조됩니다. 개신교의 예배는 말씀 선포가 중심이 됩니다. 어느 종파보다도 성경연구와 해석에 힘을 기울입니다. 신학자나 목회자들 뿐 아니라 평신도들도 적극적으로 성경연구에 동참합니다. 평신도들의 성경연구는 개신교의 가장 큰 특징이자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일대일제자훈련, 커피브레이크 그리고 T성경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성경적재정교실이 시작됩니다. 이 모든 성경공부와 양육훈련의 공통점은 목회자들이 시작하지만 평신도들이 리더가 되어 평신도를 가르치는 평신도 사역입니다. 이런 사역은 모두 종교개혁의 열매입니다. 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성경으로라는 이 정신이 없었으면 우리는 이렇게 풍부한 진리의 바다를 헤엄치는 행복은 누리지 못 했을 것입니다. 개신교를 개신교 되게 하는 것, 오직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배우고 전하여 진리의 보화를 캐내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 위에 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종교개혁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정신은 Sola Gratia와 Sola Fide 즉 오직 은혜로와 오직 믿음으로입니다. 이것은 죄인의 구원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에 관한 깨달음입니다.

중세교회는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공로가 결합하여 가능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이 인간의 공로를 요구하는 세상의 모든 다른 종교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구원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 공로를 부지런히 쌓습니다. 그러나 거룩의 이상과 죄의 현실 사이의 깊은 간극을 메우지 못 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경건의 겉모양을 경건으로 착각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위선에 빠지는 두 극단으로 갈라졌습니다. 루터는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죄인이 그 은혜를 누리는 길은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비난받을 것 없는 수도사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나의 처지에서 오는 양심의 불안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으며 나의 인격으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것을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로마서 1:17을 연구하던 루터는 그 때의 깨달음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 때 나는 순전히 은혜와 자비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즉시 나는 마치 내 앞에 열린 문을 통과해서 천국으로 들어간 것 같은 확신을 느꼈다.” 

오늘날 개신교가 세상에 끼친 가장 위대한 영향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입니다. 세상에는 참 된 은혜가 없습니다. 은혜가 없이는 가정도, 일터도, 국가도, 문명도 지탱되지 못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을 용서하게 만들고 이웃을 용서하게 만들고 원수도 용서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절망적인 죄인이 거룩한 성도의 옷을 입고 천국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만듭니다. 은혜가 다스리는 공동체는 죄악의 저주가 가득한 이 세상의 산소이자 생수이며 햇살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새롭게 되기를 축복드립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종교개혁의 네 번째 정신은 Sola Christus 오직 그리스도로입니다.

중세교회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외에 마리아와 성인들을 높히고 그들의 유물을 신성시하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아베 마리아, 산타 마리아는 모두 성모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지금도 카톨릭에서는 기도할 때 천국에 있는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공로를 의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을 우상화하는 결과를 가지고 올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중보에 관한 온전히 공로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신 말씀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다원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붙들어야 할 절대적 진리의 닻입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서는 닻을 내려야 합니다. 바람과 파도가 크면 클수록 배가 이리저리 요동하지 않고 굳건히 항구에 머물기 위해서는 더 튼튼한 닻이 필요합니다. 다원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는 온갖 비진리의 사상과 철학, 세상 풍조와 경향에 흔들립니다. 이 때 성도들을 굳건하게 붙드는 진리의 닻은 성경의 권위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많은 길이 있다는 말은 참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그것은 진리의 속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착각입니다. 진리란 직선과 같은 것입니다. 직선은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것은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두 점을 잇는 선은 무수히 많지만 그 중 직선은 오직 하나이며 나머지는 모두 곡선이지 직선이 아닙니다. 이처럼 죄인과 하나님 사이를 잇는 생명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이며 다른 길들은 생의의 길이 아닙니다. 오직 유일한 길이라 스스로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라면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고, 다른 어떤 것이든 다 진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맞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은 다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가 태어난 지 2천 년이 지나고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500년이 지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진리되심은 여전히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 진리를 굳게 붙들 때 성도는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진리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생명의 길을 곧게 달려가게 됩니다.

온갖 거짓의 파도와 세속의 바람이 교회를 뒤흔드는 오늘 우리는 다시금 오직 성경과 오직 은혜, 오직 믿음과 오직 그리스도를 다시 붙으심으로 멈추지 않는 개혁자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