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9:7-20/거룩의 비밀

171112 주일설교 요셉

 성산 장기려 박사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성산 장기려 박사는 6.25 전쟁 통에 가족들과 월남을 계획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둘째 아들만 데리고 병원과 교회에 들러 짐을 꾸리고 늦게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해주 쪽으로 향하던 아내 김봉숙 씨는 중공군에게 막혀 북에 남고 결국 자신만 아들과 월남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995년 별세할 때까지 50여 년을 홀로 살았습니다. 그를 아끼는 많은 이들이 그에게 재혼을 권했지만 그는 언제나 같은 말로 거절하였습니다.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나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평양에서 결혼할 때 주례하신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백년 해로해라. 그러니 재혼은 백년 뒤에나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잠시 동안은 그저 혼자 살겠습니다.”

1991년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아내와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택용 엄마, 어느 덧 40년이 흘렀소. 6.25의 참화로 가족과 생이별을 한 이가 어찌 나뿐이오만, 해마다 6월이 되면 뭉클 가슴 깊은 곳에서 치미는 이산의 설움을 감당하지 못 하고 기도로 눈물을 삭이곤 하오.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평양을 떠날 때 둘째 가용이만 데리고 월남한 것이 지금 내 가슴에 못이 되었소.”

김봉숙 씨의 편지입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당신께, 기도 속에서 언제나 당신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마음속의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당신은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응답해 주셨고 저는 그대로 하였습니다. 잘 자란 우리 아이들, 몸은 헤어져 있지만 저 혼자 키운 것이 아닙니다.”

장기려 박사와 김봉숙 씨의 사랑은 모든 것이 한없이 가볍기만 한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던져줍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과 서로를 향한 깊은 신의 위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과 신의는 오늘날에도 성도가 정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요셉에게서도 배웁니다.

 

유혹을 이기는 요셉

오늘 본문은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보디발의 집 가정총무로 일하던 중 그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간 나이를 37:2은 17세라고 알려주고 총리대신이 된  나이를 41:46이 30세라고 알려주니 노예와 죄수로 13년을 보낸 셈입니다. 13년 중 노예와 죄수로 보낸 시간이 정확히 몇 년씩인지는 알 수 없지만 7년의 노예생활, 6년의 죄수생활로 구분해 놓은 연대기가 있습니다. 노예생활을 7년이라고 본다면 그가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은 때는 24살 정도입니다. 39:6은 그의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눈독을 들이고 유혹을 시작합니다. 날마다 계속되는 유혹에도 요셉은 넘어가지 않았는데, 마침내 어느 날에는 옷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녀를 뿌리치고 겉옷을 벗어버린 채 그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그녀는 돌아온 남편에게 요셉이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로 요셉의 옷을 보여줍니다. 보디발은 크게 화를 내며 요셉을 왕가의 감옥에 가둡니다.

그가 매번 자리를 피해버렸다는 것은 그에게도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 도저히 이겨낼 수 없으니 피한 것입니다. 젊고 혈기왕성한 요셉은 어떻게 그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시험을 이긴 비밀은 오늘날 수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 비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시험을 이기는 첫째 비밀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사는 삶입니다. 9절에 나옵니다.

(창 39:9) “…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시험의 상황 속에서 보이는 보디발의 아내가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늘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요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늘 당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의식하며 사셨고 당신도 늘 하나님 안에 머무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이런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고 말씀을 묵상하셨고 감사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제자들에게 이런 삶을 가르쳤습니다.

(살전 5:17)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8)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9)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것은 우리를 늘 하나님의 임재 속에 머물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은 늘 염려하고 불평하고 냉소하는 세상의 방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 삶은 마귀의 임재 속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삶의 방식입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경험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잘 모르고 경험하지 못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 이 시간, 내 삶에 항상 함께 하시고 나를 돌보실 뿐 아니라 지켜보고 계심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사람들이 보든 안 보든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은 유혹을 이겨냅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도둑질하는 이가 없듯이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유혹에 넘어가는 바보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에의 신의

시험을 이기는 둘째 비밀은 신의를 지키는 태도입니다. 신의란 믿음과 의리를 말합니다. 8-9절입니다.

(창 39: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창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요셉은 자신을 믿은 주인 보디발의 믿음을 배신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 신의가 요셉의 생명을 구하고 그를 왕궁까지 인도합니다. 만약 그가 보디발을 배신하였다면 그는 잠시 쾌락을 누리는 대가로 결국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물론 신의를 지켰는데도 감옥에 가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이 정말 요셉을 벌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19절의 보디발의 분노가 정확히 누구를 향한 것인지 본문이 밝히지 않고 있다는 데에 주목합니다. 정말 보디발이 오해하고 요셉에게 분노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은 감옥이 아니라 즉각 처형이었을 것입니다. 어디 노예 따위에게 정식재판이니 정상참작이니 하는 것이 있는 시대입니까? 그를 감옥에 넣었다는 것은 오히려 보디발이 그의 아내에게 화를 내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녀의 품행을 모르지 않고 요셉의 신의를 모르지 않는 보디발은 실상을 짐작하지만 그것을 밝히는 것은 아내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에 모르는 척 요셉을 감옥에 넣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오히려 요셉을 왕궁으로 보내는 하나님의 섭리로 작용합니다. 하나님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을 지키시고 보답하십니다. 성도에게 믿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신의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은 믿는다면서도 사람과 한 약속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믿음을 저버립니다. 의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의심해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성장은 인간에 대한 신의의 성장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 사랑과 함께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비지니스를 하다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사람을 만나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믿음이 더 생겨야 하는데 어떤 경우는 오히려 의심을 품게 되지 않던가요? 믿음은 있다고 하는데 신의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심심찮게 같은 기독교인에게 속고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믿는다는데 신의가 없다면 그 믿음도 가짜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혼식에서 우리는 서약을 합니다. 그것은 배우자에게 하는 약속이자 증인이 되신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게 하는 약속입니다. 배우자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한 약속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옛 약속과 새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하는 신앙고백은 영적인 결혼서약입니다. 신의를 지키는 태도가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오늘날 문화는 이 신의를 우습게 압니다. 신의의 자리를 탐욕과 욕망과 허영이 차지했습니다. 예전에는 신의를 지키지 않으면 부끄러워 하기라도 했습니다. 이제는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신의를 지키는 사람을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신의가 있는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킵니다. 신의가 있는 자신을 절제합니다. 신의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게도 충성합니다. 그리고 신의가 있는 사람을 하나님을 축복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신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사명에 충성함

시험을 이기는 마지막 비밀은 사명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4절과 8절을 보십시오.

(창 39: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 (창 39: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보디발은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일절 간섭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말은 요셉이 보디발에게 그 정도로 신뢰를 주었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요셉은 보디발이 일절 간섭하지 않아도 되도록 맡기는 모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거룩한 삶은 그가 자신의 사명을 게을리하지 않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게으른 사람은 유혹에 취약진다는 말입니다.

요셉과 대조적인 성경의 위인이 다윗입니다. 그 역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요셉과 달리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밧세바의 유혹에 넘어가 무서운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다윗은 왜 요셉과 달리 실패하였을까요? 다윗이 밧세바에게 유혹되는 장면인 삼하 11:2을 보면 그의 군대가 전쟁을 치르러 출정한 때에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삼하 11:2) 저녁 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뒹굴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왕이 전쟁에 직접 나갈 상항이 아니라할지라도, 지중해 연안의 낮잠풍습인 시에스타를 고려하더라도 그는 지나치게 나태했습니다. 바로 그 때 유혹이 강력해집니다. 사명이 약해지면 유혹이 강력해집니다. 사명에 충성하는 이에게는 유혹이 힘을 쓰지 못 합니다.

한국의 서울신문과 마크로밀엠브레인이라는 여론조사기관에서 내놓은 통계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소득과 불륜의 상관관계인데요, 결론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불륜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소득이 없는 응답자 중 10.2% 즉 열 명 중 한 명 정도가 불륜의 경험이 있었는데 소득이 높아질수록 불륜의 비율도 정비례로 높아져서 월 700만원 이상의 소득 계층은 51.6% 즉 두 명 중 한 명이 불륜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불륜비율이 높은 직업군은 5급 이상 고위공무원과 부장금 이상 기업 간부 그리고 학교장 등 경영, 관리직 종사자였습니다. 돈과 권력은 사람의 마음을 나태하게 만들고 마귀는 그 나태함을 파고들어 유혹의 덫을 놓습니다.

먹고사는 것이 사명인 사람은 먹고살만하면 나태해집니다. 그런 사람은 여유가 생기는만큼 강해지는 유혹을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사명인 부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부요하든 가난하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성은 유혹을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에 충성함으로써 모든 헛된 유혹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요셉과 장기려 박사에게 배우는 거룩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며 신의를 지키며 살고 사명에 충성하며 사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기 위해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마귀의 유혹이 맥을 추지 못 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품은 요셉과 장기려 박사가 수많은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깊은 울림을 던진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품은 거룩한 인생이 되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