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18-25/천국을 누리는 가정

180107 주일설교 표어

 우리를 내모는 위협

할렐루야! 2018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일터 위에 은혜로우신 우리 주님의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새해 벽두에 안타깝게도 우리 뉴저지를 포함한 미국 북동부에는 100년 만에 최고라는 살인적 한파가 덮쳤습니다. 눈폭탄과 한파으로 뉴욕, 필라델피아 등 여러 도시들이 마비되었고 나이아가라마저 얼어붙었습니다. 보스턴은 이 추위에 해일로 인한 홍수피해까지 겪고 있습니다. 미 전역에서 현재까지 17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제일 걱정은 갈곳없는 노숙자들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잠시 눈을 치우러 나가도 눈폭풍이 얼마나 매섭고 아프게 뺨을 때리는지 이 날씨에 갈 곳이 없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디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한파를 피할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집을 뺏고 나를 저 눈폭풍 속으로 내쫓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그 집을 뺏기고 살을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의 한파 속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영혼의 집인 가정을 빼앗긴 이들입니다. 집이 우리 몸을 살인적 추위로부터 지켜주듯 가정은 우리 영혼을 온갖 인생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가정은 영혼의 울타리이자 넓은 지붕이자 튼튼한 벽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영혼의 집인 가정을 무너뜨리려는 온갖 위협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2015년 6월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후 동성결혼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6년까지 약 39쌍 이상의 동성커플이 있고 결혼하지 않은 동성커플은 그보다 훨씬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결혼 자체를 거부하는 1인 가정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혼한 가정을 위협하는 음란과 이기심, 독선과 탐욕이 가정의 울타리를 조금씩 허물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건강한 가정은 지속적으로 흔들리고 또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신앙도 흔들리고 하나님 나라도 위협받습니다.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신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 해의 표어는 천국을 누리는 가정입니다. 천국을 누리고 세우고 전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변하지않는 사명입니다.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성도들 개개인의 가정이 천국을 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 가정이 천국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번의 설교로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천국 시리즈 설교가 끝나면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 시리즈 설교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 가지 주제만 다루어보고자 하는데 그것은 부부관계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돕는 부부

가정에는 여러 가지 관계가 있습니다. 부부관계가 있고 부모로서 자녀와의 관계, 자녀로서 부모와의 관계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계는 무엇일까요? 저는 부부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이 바로 이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그 후에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부부 관계는 틀어졌을 때 가장 가정을 위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틀어져도 가정을 잘 깨뜨리지는 않고 후에 다시 회복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부부관계는 가정을 가장 쉽게 깨뜨리고 회복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 부부관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서로를 돕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먼저 본문이 가르치는 것은,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홀로 사는 삶이 가능해졌고 스스로 그런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또 원하지 않지만 사회, 경제적 요인 등으로 그런 삶을 강요받게 된 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외적으로 홀로 사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결코 추천할 만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을 빨리 결혼하고 홀로 된 분들은 복된 가정을 다시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축복합니다.

왜 홀로 사는 것이 좋지 못 하다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사명을 이루는 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창 1:28입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사명이 있습니다. 생육하다는 히브리어 파라는 열매를 맺다, 다산하다는 뜻입니다. 즉 자녀를 많이 낳는다는 것이지요. 자녀는 많을수록 좋다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역시 사회, 경제적 환경이 다 다르기에 몇 명이 많은 것이냐에 대한 판단은 모두 다를 수 있겠습니다. 먼저 생육하면 번성하지요, 그 결과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아무튼 이 사명을 감당하기에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인데, 사실상 좋지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혼자 사는 것 뿐 아니라 동성의 관계 역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도울 배필이 필요하고 그 배필로는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판단이었습니다.

 

가장 적합한 부부

물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꼭 부부라야만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 아이는 못 만들겠지만 친구나 동료나 혹은 동성파트너나 다른 것도 잘 도울 수 있지 않나요? 설문조사를 해보니 미국인들은 친구에게서 스트레스는 가장 적게 받고 도움은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배우자에게서 도움도 많이 받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니까, 차라리 친구가 낫지 않나요? 속 썩이는 남편, 아내보다 마음 맞는 동성애인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AI나 로봇이 나오면 속 썩이는 남편, 아내보다 성공적인 삶을 훨씬 잘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영국에 Humans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AI로봇을 사서 집안일을 시키다가 큰 도움과 위로를 느낀 여자가 속썩이는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남편들 긴장하셔야 합니다!

18절의 이 말씀을 하시고는 19-20절에서 재미있는 행동을 하십니다.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18절에서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시고는 19절에서는 동물들을 아담 앞에 이끌어 가셔서 아담이 그들을 뭐라 부르는지 보시고는 20절 말미에서 다시 돕는 배필이 없다는 말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행동은 그 동물들 중에 아담을 돕는 배필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있는지 보셨다는 말입니다. 아담은 그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것들 중 어느 것에도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서 그에게 보여주시자 그는 그녀를 여자라는 이름 이상의 것으로 부릅니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무엇이라 부르나 보시려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하나님은 동물들을 이끌어 가신 것처럼 여자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 목적은 그가 무엇이라 부르나 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대로 아담은 그녀를 여자라 부르는 외에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여자만이 돕는 배필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요, 다른 어떤 존재도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 했다는 말입니다.

친구나 동료도 도움을 주지요. 동성애인도 나름 도움이 분명 될 겁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AI로봇은 어쩌면 남편보다 훨씬 집안일을 잘 돕고 아내보다 훨씬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도 남자에게 여자가, 여자에게 남자가 주는 것만큼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본문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동물들 밖에 없었으니 이런 장면이 연출되었겠지만 만약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 본문을 다시 쓴다면 남자 앞에 친구와 동료와 동성애인과 AI로봇이 차례로 지나가게 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뭐라 부르는지 보셨다는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점을 다음 구절이 더욱 강조합니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가 여자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계획이요, 서로를 도와 사명을 이루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부부관계가 사명완수를 돕는 관계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는 사랑해서 오직 사랑만을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까?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요? 사명완수와 참된 부부사랑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사랑이야말로 사명완수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의 사명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복주신 하나님의 사역을 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인간은 세상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 사랑과 축복의 사명을 감당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참되게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곧 배우자가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사랑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뜨거운 부부사랑의 허상과 다른 것입니다. 사랑이 목적이라고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이성을 향한 자신의 뜨거운 가슴과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를 상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 사랑은 현재의 배우자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많은 필요를 채워주는 이를 만날 때면 언제든 그 대상이 바뀌는 것으로, 정확히는 사랑이 아니라 정욕이자 이기심일 뿐입니다.

참된 사랑은 뜨거운 감정과 자신의 필요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우자가 하나님이 내 앞으로 인도해주신 돕는 배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이렇게 외치게 되지요.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표현은 당신은 나와 같은 존재요, 내 존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해 아내가 곧 나라는 말이요, 남편이 곧 나라는 말입니다. 우리 자신이 모습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내다 버립니까? 그것처럼 불신앙이요, 어리석은 결정이 어디 있을까요? 배우자가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내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그가 채워주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 첫 번째 길이 있다면 부부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명완수를 서로 돕기 위한 존재로 하나님에 의해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 남편, 내 아내가 나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인 것을 깨닫고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 2018년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