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3:1-14/잃으면 잃으리라

180701 주일설교 요셉11
움켜쥠
평화가 서너 살 때였던 것 같습니다. 장난감 가게에 가서 마음에 드는 로봇을 하나 골랐습니다. ‘아빠가 사줄게. 이건 평화 거야.’ 계산대 앞에서 평화에게 장난감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는 듯이 장난감을 꽉 움켜쥐는 겁니다. 아빠가 사준다고 했잖아? 그래, 사주는거야, 그러니까 아빠를 줘. 무슨 소리야? 사준다면서 왜 뺏어가? 아, 이건 뺏어가는 게 아니고 계산하는 거야, 평화가 장난감을 여기 아저씨에게 드리고 아빠가 계산을 해줘야 평화가 이 장난감 가지는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평화는 자기 장난감이 계산대 위에 올라가고 직원이 스캐너로 찍고 아빠가 지갑을 열고 하는 과정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며 과연 자기 장난감이 자기 손에 돌아올까 염려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원리는 평화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하는 진리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움켜쥐는 것만 알 뿐 내려놓는 법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움켜쥐면 쥘수록 점점 잃어버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던 한 인물을 오늘 본문에서 만나봅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야곱입니다. 
창 43장 전반부를 읽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이집트에서 사온 양식이 다 떨어져 다시 사러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형들은 이집트의 총리의 요구대로 베냐민을 데려가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은 혹시라도 막내 아들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봐 절대 안 된다고 버팁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꽉 움켜쥔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견딜 수 없이 괴롭습니다. 야곱부터 불안해서 잠이 안 옵니다. 언제 아들 놈들이 자는 새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떠나버릴지, 그러면 늙은 자신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죽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들들도 가족들도 부족들도 다 죽을 노릇입니다. 양식은 떨어졌고 애기들은 울고 우리도 배가 고파죽겠는데… 두고온 시므온은 어쩝니까? 그러면 베냐민은 행복합니까? 생각이 있으면 자기 하나 지키고자 온 부족이 굶어죽게 생겼는데 밥이 입에 넘어가겠습니까? 정작 자신도 배가 고파죽을 지경입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살리려고 하는데 왜 모든 사람을 괴롭게 만들고야 마는 겁니까? 야곱의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한 마디로 집착의 사람입니다. 그는 일생토록 그 무언가에 집착하며 그로인해 많은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그는 장자권에 집착했습니다. 장자권은 곧 유산상속권입니다. 즉 돈에 집착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기어이 그 장자권을 차지했지만 결국 그는 한 푼도 상속받지 못 하고 형에게 쫓겨 먼 하란땅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외삼촌의 집에서는 그 딸 라헬에게 집착했습니다. 그는 애정에 집착하지요. 일생 애정결핍증 걸린 사람처럼 애정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헬은 아름다웠지만 그리 지혜로운 여인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네 명의 아내들의 시기와 다툼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라헬이 죽고나자 그녀의 아들인 야곱에게 집착했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거친 양치기를 시키면서도 요셉에게만은 비싼 채색옷을 입히고 힘든 일을 일절 시키지 않고 편애하여 다른 아들들의 시기와 불만을 삽니다. 결국 요셉은 그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기에 이릅니다. 요셉을 그렇게 만든 데는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집착이 큰 몫을 한 것입니다. 
요셉을 잃고난 후 노년의 야곱의 집착은 라헬의 다른 아들, 요셉의 동생 베냐민에게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 집착 때문에 야곱의 모든 가족과 부족은 꼼짝없이 굶어죽을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사랑과 집착
사랑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사랑은 대상을 자유롭게 하지만 집착은 구속합니다. 사랑은 대상의 유익을 구하지만 집착은 자신의 유익을 구합니다. 집착은 사랑하는 대상보다 그 대상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야곱의 말을 들어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창 42: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베냐민)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 하겠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절대’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건 너무 소중해서 절대 잃어버릴 수 없어! 이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모두가 집착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또 함부로 생명을 결부시키지 않습니다. 가장이면서 부족장이기도 한 사람이 다른 열 명의 아들과 부족 전체의 안전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아들 하나에 목숨을 거는 것이 건강한 사랑일 수 있겠습니까? 여보,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어버릴거야. 그럼 애들은? 부모님은? 당신 인생은? 불타는 사랑이 아니라 분별없는 사랑이요, 집착입니다. 

내려놓음
야곱과 가족과 부족이 모두 살 길은 어디서 열립니까? 야곱의 내려놓음에서 시작됩니다. 아들들의 설득에 못이긴 야곱이 마침내 이렇게 말합니다. 
(창 43:13) ‘네 아우(베냐민)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창 43: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시므온)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베냐민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인정합니다. 베냐민도 인생에서 잃어버릴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처럼 ‘절대 안 되는’ 어떤 존재가 아님을 인정합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절대로 잃지 않고 움켜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롭게 됩니다. 사랑하는 그 대상도 자유롭게 해 줍니다. 집착의 껍질을 깨고 비로소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잃을 각오를 하고 자기 손에서 내어보냈지만 결국 그것이 베냐민도 살리고 다른 아들들도 살리고 자신도 살리고 부족 모두를 살립니다. 우리 손에서 소중한 것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그것을 얻게 됩니다. 내려놓아야 우리도 살고 이웃도 살리고 가족도 살립니다. 신기하게도 버리면 얻습니다. 전도서를 보십시오. 
(전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달 후에 도로 찾으리라.
 
생명을 얻는 길
에스더서를 보십시오. 바사제국의 왕후가 된 에스더는 큰 부귀를 누렸지만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이 원수 하만의 계략에 몰살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삼촌 모르드개가 와서 에스더에게 요청하기를, 하만의 계략을 황제에게 고발해서 동족들을 살려달라고 하지만 황제가 부를 때까지 스스로 나갈 수 없는 바사제국 황실의 룰을 어겼다가는 폐위를 당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에스더는 두려워합니다. 그런 에스더에게 삼촌 모르드개는 ‘하나님이 너를 황후의 부귀를 누리게 하신 일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니며, 동족이 몰살당하면 너 혼자 살아남아 부귀를 누릴 수 있겠느냐’며 도전합니다. 그 말에 도전을 받은 에스더는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습니다. 
(스 4:16) ‘당신(모르드개)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에스더)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는 야곱의 결단처럼 생명을 잃으면 잃겠다고 에스더는 결단합니다. 그 결과 에스더는 생명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자신과 동족 전체를 구원합니다. 버리면 찾고 죽으면 삽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생명의 원리입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을 얻는 길은 그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몰라서 우리 인생들은 얼마나 얼마나 고생하는지요. 
 
잃으면 잃으리라
한국사회의 가족갈등 중 대표주자는 전통적으로 고부갈등이었습니다만 최근 장서갈등이 이를 앞지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못지않게 장모와 사위의 관계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댁보다도 친가와 더 가깝게 지내는 최근 세태의 영향이 큽니다. 부모와 성인이 된 자녀 사이의 갈등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부모가 자녀를 내려놓지 못 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딸이 너무 소중해서 그들의 삶을 지원하고 후원하지만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들을 놓아주지 못 해 자유와 존중을 낳는 건강한 사랑 대신 지배와 간섭을 낳는 집착으로 서로 고통을 겪습니다. 
(마 19: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사람은 성인이 되면 정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그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존재로 서야 합니다. 놓아주어야 자녀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해집니다. 
최근 한국사회의 재벌가 오너들의 갑질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위 오너리스크라고 불리는 이들의 갑질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지탄과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지만, 그 결과 회사의 매출과 주가가 추락하고 수천 명 직원들의 생계가 위태롭게 되곤 합니다. 이 오너가의 부정한 경영 때문에 최근 진에어항공사는 면허취소로 2천 명의 직원들이 실직 위기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내가 일군 회사요, 내 회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피땀 흘려 회사를 창업하고 일으켜 번창시킨 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만, 그 회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옵니다. 어떤 회사인들 직원들의 노고와 고객과 사회의 지원 없이 오너 혼자만의 수고로 성장할 수 있습니까? 이미 그것은 내 회사가 아니라 직원들의 회사요, 고객들의 회사요, 이 사회의 회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려놓아야 자신도 살고 회사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내 자식, 내 회사 뿐 아니라 내 직장, 내 건강, 내 돈, 내 젊음 심지어 내 생명까지 그 어느 것도 영원히 내 것일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잠시 내게 들렀다 지나가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잃으면 잃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는 것입니다. 달라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되찾습니다. 그러면 진짜 삽니다. 
자녀를 놓아주면 자녀를 되찾고 회사를 내려놓으면 회사를 살리고 건강을 내려놓으면 편안해지고 돈을 내려놓으면 자유를 얻고 생명을 내어놓으면 영원히 삽니다. 
 
내려놓으라
남태평양의 여러 섬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는 재미있는 방법이 알려졌습니다. 야자나무 밑둥치에 조그만 구멍을 뚫은 야자열매를 줄로 묶어 두고 그 안에 땅콩을 한 줌 넣어둡니다. 땅콩을 좋아하는 원숭이들이 냄새를 맡고 와서는 열매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땅콩을 꽉 쥡니다. 그 때 숨어있던 사람이 나타나면 원숭이는 혼비백산해서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치려는데 땅콩을 손에 가득 쥔 채 도망을 가려니 손이 안 빠지는 겁니다. 땅콩을 놓아버리면 되지만 그 생각을 못 하는 겁니다. 결국 원숭이는 한 줌의 땅콩 때문에 자유와 목숨을 잃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꽉 쥐고 계신지요?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내려놓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믿고 다 내려놓고 생명의 길 가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