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9-34/돈으로부터의 자유

180812 교회창립/광복절기념주일
두려움과의 대화
오늘은 광복 73주년, 교회창립 46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조국 한국에 광복을 주시고 우리 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설교는 그러나 기념주일에 맞춘 것은 아닙니다. 먼저 영상을 하나 보시지요. 
영화배우 짐 캐리가 주연한 에이스 벤츄라, 라이어 라이어, 브루스 올마이티, 에디 머피의 너티 프로페서, 로빈 윌리암스의 패치 아담스 그리고 에반 올마이티 등 메가히트 휴먼코미디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같은 감독 영화란 점입니다. 할리우드의 스타감독 톰 새디악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영화가 빅히트를 기록할 때마다 그는 다른 헐리우드 감독들이 그러하듯 연봉협상을 통해 마침내 한 편에 수백만 불을 받는 스타감독이 되었습니다. 대저택에서 고급차를 여러 대 세워놓고 자가용비행기를 타고 하와이에서 몇 달씩 휴가를 보내는 삶을 마침내 누리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던 그였지만 어느날 산악용 자전거를 타다가 뇌진탕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더욱 진지하게 그 의미를 묻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이 망가진 세상이 만들어놓은 덫, 인정받지 못 하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덫에 걸린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영화 한 편에 수백 만 달러를 버는 동안 자신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자신을 돕는 스텝들은 매일매일 생계를 걱정해야한다는 것이 공정하지 못 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망가진 세상을 고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을 한 그는 자신의 대저택과 자가용 비행기, 고급 자동차 등을 모두 처분하여 구호단체에 기부하고 이동식 주택으로 옮겨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삶을 살며 비영리영화사를 설립하여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는 더 성공하고 더 소유하고 더 부유해지지 않으면 큰일날 것이라고 위협하는 자기안의 두려움과 끊임없이 싸우며 깨달은 바를 ‘두려움과의 대화’라는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대부분은 이 사람처럼 큰 돈을 벌지는 못 할 것이고 또 이 사람처럼 전 재산을 처분하자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이 사람이 돈의 압박으로부터 얻은 자유를 우리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으로부터의 자유
성경적재정교실을 교인들에게 권하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묻습니다. ‘이 과정을 공부하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니요. 그럼 뭘 배우나요?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돈 때문에 울고 웃고 돈 때문에 때로 자유와 목숨까지 희생시킵니다. 이정도면 돈이야말로 인간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24절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하나도 과장이 아닙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은 주인자리를 놓고 하나님과 경쟁합니다. 왜 우리는 돈의 노예로 전락할까요? 돈에 대한 잘못된 두 가지 태도 때문입니다.
 
돈을 쌓으려는 것
첫째는 돈을 쌓아두려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우리 모두 돈을 더 많이 쌓아두고 싶습니다. 특히 현대세계에서 가장 발달하고 살벌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는 노골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쌓고 더 쓰는 삶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옷에 스는 좀과 동전에 생기는 동록과 사기꾼, 도둑을 막기위해 우리는 돈도 더 써야 하고 신경도 쓰고 괴로움도 겪어야 합니다. 냉장고에 넣고 잊어버려 얼린 음식을 버려야 하고 쓰지도 않은 채 창고에 넣어두었다가먼지쌓인 가구와 가전제품과 낚시도구와 골프채를 내버려야 합니다. 인류의 절반이 빈곤상태에, 그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 세계에서 말입니다. 돈을 쌓아두기 위해 우리는 이웃들과의 평화를 희생시킵니다. 가족과 남남이 되고 친구와 원수가 됩니다. 하지않아도 되는 많은 고생을 합니다. 디모데전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럼 어떻게 하면 돈이 주는 많은 근심과 고통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까? 20절입니다.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하여 쓰는 것입니다. 그럼 톰 새디악처럼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럼 가족은 어떻게 돌보나요? 그런 걱정은 필요없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구제의 1순위는 바로 가족입니다. 성경도 성도의 첫째 의무를 가족을 돌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가 돈을 하늘에 쌓으면 우리의 마음이 비로소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립니다. 21절입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 마음에 땅에 머물면 온갖 근심과 고통에 짓눌립니다. 하늘에 머물면 평화와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의 돈을 하늘에 쌓음으로 그 마음이 하늘에 머물고 그래서 하늘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돈으로 염려하는 것
돈에 대한 잘못된 두 번째 태도는 돈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우리는 돈을 못 벌어서 가난할까, 고생할까, 원하는 삶을 살지 못 할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가르치십니다. 왜입니까? 염려할 필요가 없는 첫째 이유는 염려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염려한다고 키가 자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염려한다고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덜 버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염려하면 돈을 더 못 벌 가능성이 큽니다. 염려가 눈을 가려 성공의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입니다. 
염려할 필요가 없는 둘째 이유는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성경에는 돈에 관련한 구절이 무려 2,350구절이 나옵니다. 그 어떤 주제보다 많은 빈도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돈이 필요한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돈은 필요한 만큼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선순위
네, 목사님. 저도 돈을 쌓고 싶지 않고 돈 때문에 염려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답을 33절이 알려줍니다. 
(눅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어둠을 몰아내는 방법은 어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밀려나가듯 하나님이 오시면 돈은 밀려나갑니다. 돈에 관심을 안 가지고 돈 때문에 걱정을 안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야 하얀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얀 코끼리를 생각하지마, 말하는 순간 생각납니다. 듣는 순간 생각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돈을 대체할 수 있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해야 비로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것은 바로 크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크시고 참으로 귀하시고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어떤 돈도 할 수 없는 구원을 행하시고 생명과 복과 은혜와 세상 모든 만물로 우리를 채우시고 비교할 대상이 없을만큼 우리를 진정으로 영원히 매혹시킬 수 있는 아름다우심입니다. 그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는 것만이 돈의 미련과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유를 누린 인생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의 책 ‘참회록’에서 전쟁과평화, 안나카레리나 같은 작품들로 세계적 명성과 부를 얻게 된 51세 때의 묵상을 소개합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자신이나 하나님의 가치가 아닌 이 사회가 제시하는 가치를 따라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그에게 다른 이들보다 더 부유하고 유명해지고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고 특히 그가 속한 사교계에서는 ‘야망, 권력, 부러움, 섹스, 오만, 분노, 복수를 존중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자 그는 이 모든 것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자, 내게 사마라의 땅 60,000평, 천 명의 농노, 말 300마리가 있다고 치자.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고골이나 푸쉬킨이나 세익스피어나 몰리에르보다 아니 세상 모든 작가보다 더 유명하다고 치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가난한 농노들을 위해 농민학교를 만들고 전 재산을자선사업에 사용하며 남은 생애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는 신앙 안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를 발견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톰 새디악이 발견하고 톨스토이가 누렸던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계신지요? 아니면 돈을 쌓느라, 돈으로 근심하느라 지치고 곤한 삶을 여전히 살고 계신지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심으로 이 자유를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