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3:3-17/발을 씻기는 주인

181014 주일설교
 
생명을 살리는 사명
뉴스를 통해 보셨겠지만 올 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 드니 무퀘게입니다. 올해 63세인 무퀘게는 콩고의 무장반란군에 의해 성폭행과 신체훼손을 당한 수 만 명의 여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하는데 일생을 보낸 인물입니다. 우리에겐 처음 알려졌지만 이미 인권과 평화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20여 가지 세계적인 상을 수상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소아과 의사로 경력을 시작했다가 전쟁에 희생당하는 여성들을 본 후 결심한 바가 있어 프랑스에서 산부인과 공부를 다시 한 후 귀국하여 부카부 지역에 판지병원을 설립하고 전쟁에 가장 큰 희생자인 여자들을 치료하는 한편 기독운동과 반전평화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2012년에는 무장반군 4명이 그의 집에 침입하여 딸을 인질로 잡고 기다리다가 그를 암살하려 하였습니다. 귀가하던 그는 총격을 받았고 경호원이 사망했지만 그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프랑스로 피했던 그는 세 달 만에 부카부로 돌아왔는데 공항에서 병원까지 수만 명의 환자와 시민들이 그를 뜨겁게 환영하였습니다. 그는 여전한 살해위협를 받으면서도 의와 진리, 평화와 인권을 위해 오늘도 부카부의 병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퀘게의 삶이 고귀한 이유는 의사로 큰 돈을 벌었거나 사회적으로 대접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원했다면 그렇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의사라는 직업은 성공과 풍요를 보장받는 도구가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주님의 손과 발이었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느라 돈을 벌기보다 잃었고 대접받기보다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그는 주님의 본을 받아 섬김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의사 뿐 아니라 어떤 직업이든 그리스도인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의미입니다.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가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일어난 일을 다룹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요한복음을 제외한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복음은 최후의만찬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성만찬 제정을 소개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예수님 당신의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성만찬은 기독교의 핵심교리를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예식이며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좇아 지금도 성만찬 예식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 요한복음만은 최후의만찬 자리에서 일어난 일로 성만찬 제정 대신 이 세족식을 소개합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 사도가 볼 때는 이 세족식이 성만찬 못지않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메시지를 오늘 우리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행동이 제자들을 당황시켰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당시 주인과 손님들이 만찬을 가질 때 노예들이 하는 바로 그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을 베드로의 이 반응이 드러냅니다. 
(요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왜)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종들이나 하는 일을 왜 주님께서 하십니까, 이런 것은 종들에게 맡기셔야 합니다. 더구나 고귀한 주님께서 낮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다니 안 될 말입니다.’ 베드로의 말은 이 세상이 귀천을 보는 원리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세상에서는 천한 자가 귀한 자를 섬깁니다. 그런데 주님이 왜 이렇게 행동하셨을까요?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귀천의 역전
가장 천한 노예들이 하는 일을 주와 선생이 된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셨습니까? 천국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 정확히 반대라는 것입니다. 
귀한 존재가 천한 존재의 섬김을 받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기에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귀한 존재가 되려고 합니다.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게 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야 자녀들이 귀한 존재로 대접받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생과 더불어 결정되는 신분제가 타파된 서구사회에는 새로운 신분제가 생겼는데 바로 바로 돈이 만드는 신분입니다. 돈이 많으면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어지간한 잘못은 용서도 됩니다. 봉건시대 왕이나 황제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립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그와 완전히 반대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천국에서는 섬김을 받는 이가 아니라 섬기는 이가 귀한 존재입니다. 귀한 존재가 섬기는 자리로 내려감으로써 귀함과 천함의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귀한 존재가 천한 일을 함으로써 귀한 존재가 천해지는 것이 아니라 천한 일이 귀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써 세상의 원리를 뒤집어 천국의 원리가 실천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은 귀천의 경계를 허물고 귀천을 역전시키시분 분이십니다. 
이를 위해서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된 우리들이 이 원리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6절입니다. 
(요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제자들)이 주인(예수님)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보다 크지 못하나니’
크신 분, 주인이자 보내신 분 예수님이 섬김의 원리를 실천하셨는데 작은 자, 종이자 보냄을 받은 우리들이 이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분의 종이 아니요, 그 분이 보내신 제자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님이 보내신 종인지 아닌지는 천국의 원리, 섬김의 원리를 따르며 사는지를 보면 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찬식의 의미,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씻어주셨다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본을 좇아 이 원리를 따라 살고 있는지요? 그럼 이 원리를 따라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섬김을 배우는 곳, 교회
그것은 우리가 섬김을 받는 자리에서 섬기는 자리로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섬김을 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섬김을 배우고 실천하는 곳입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는 영적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구글에서 우리 교회 이름을 쳤더니 마치 아마존에서 상품에 별점을 주듯이 별점을 매길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몇몇 방문자들이 부과한 별점으로 점수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한 방문자가 5점 만점에 1점을 부과한 후기에는 자신이 방문하여 안내하는 이에게 교회에 처음 왔다고 했더니 다소 무뚝뚝하게 윗층으로 올라가라고 했다면서 방문자를 이렇게 대해서 되겠느냐며 1점을 준 이유를 설명해 두었습니다. 그 방문자는 자신이 마땅히 따뜻한 환영과 안내를 받아야 한다고 여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도 주차공간을 빨리 마련해 주지 않으면 불쾌합니다. 극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듯 예배에 좋은 자리에 앉지 못 하고 예배안내나 광고가 부족하여서 불편을 겪으면 불평이 생깁니다. 목사의 설교로 위로와 은혜를 못 받으면, 사실 많은 경우에 지적, 영적 쾌감을 받지 못 하면 불만이 생깁니다. 교육부가 좋은 프로그램으로 자녀들을 잘 돌봐주지 못 한다고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이런 반응이 뭐가 문제일까,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서비스를 기대하는 고객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관점은 다릅니다. 그들은 주차봉사자들이 얼마나 귀한 수고를 하는지 고마워하고 부족한 주차공간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다른 교인들 걱정을 하고 합니다. 새가족과 믿음이 어린 성도들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부족하다 느끼면 목사를 위해 기도하고 성도들의 믿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육부가 더 자녀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자신이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찾습니다. 왜 내게 불편을 주는지 불평하기보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더 견고해질 수 있도록 내가 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를 찾고 기도하고 실천합니다. 왜입니까? 그는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는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섬김의 부르심, 직분
그리스도의 제자인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준이 직분에 대한 태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애쓰고 올라가면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 한다 생각하면 소위 갑질을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직분을 계급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직분은 섬김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서리집사가 되면 섬기라는 말이고 안수집사와 권사가 되면 더 섬기라는 말이고 장로나 목사가 되면 죽도록 섬기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원리를 몰라서 한국교회는 얼마나 많은 문제를 겪는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 (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그런데 한국교회는 아직도 이 교훈을 모릅니다. 모르고 행치 않기 때문에 복이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직분을 얻으면 갑자가 목이 뻗뻗해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지적질이 시작됩니다. 군대에서 계급장을 달듯이 직분을 여깁니다. 목사, 장로들이 교회에서 주도권 다툼을 합니다. 장로가 되려고 선거운동을 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당파를 짓습니다. 직분을 못 받으면 불평, 불만을 쏟아놓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 하고 실천하지 못 하면 그가 무슨 직분을 가졌든, 예수님을 주로 부르든 안 부르든 상관없이 그는 그리스도와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한국교회는 해외선교를 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 안 믿는 교인이 한국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요! 한국교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모르고 순종치 않으면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섬김의 사명, 직업
성도가 섬김으로 부르심을 받은 곳이 또 한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은 우리의 일터입니다. 세상은 직업을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더 부유한 삶을 살기 위한 도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 대접을 많이 받는 직업은 귀하게 여기고 그렇지 못 한 직업은 천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성도의 삶에서 이 원리는 뒤집어집니다. 성도에게 가장 귀한 직업은 바로 섬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변호사나 의사는 아마 이민자들이 가장 자녀들이 갖기를 원하는 직업 중 하나일 겁니다. 이민자들이 가장 차별을 덜 받으면서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라면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천한 직업 중 하나일 뿐입니다. 약하고 억울한 이들을 돕는 주님의 손이 되기를 원하는 법률가, 사람들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를 원하는 의사가 되기를 원할 때 이들은 가장 고귀한 직업이 됩니다. 
한인들이 많이 하는 비지니스 중 하나가 네일샾, 마사지샾 등입니다. 변호사님, 의사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마사지 하시는 분들, 네일을 하시는 분들을 존중해서 부르는 호칭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직업을 대접받느냐, 대접하느냐의 기준으로 귀천을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네일 서비스, 마사지 서비스를 섬김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하는 이들은 가장 귀한 직업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의 발을 씻기셨듯이 우리는 고객들의 발을 씻김으로 주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주님을 본받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섬김의 본을 받음으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