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8:1-15/목숨을 건 신앙

181125 주일설교 엘리야3
목숨을 건 신앙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수많은 미국내 학교총기사건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세 딜런 클리볼드와 18세 에릭 해리스의 두 남학생이 반자동소총을 들고 학교에 난입하여 900여 발의 실탄을 발사하여 13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이 피해는 올초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서 더 큰 피해를 남긴 학교총기사건을 발생하기 전까지 최악의 학교총기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생존자인 11학년생인 조시의 증언에 의해 캐시 버널이라는 여학생의 순교사건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도서관 테이블 밑에 웅크리고 숨어있던 조시는 총을 든 두 학생이 바로 곁에 웅크리고 있던 캐시에게 다가갔을 때 욕설을 퍼부으며 낄낄대는 그들의 웃음소리와 발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캐시에게 뜬금없이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던 것으로 보아 캐시는 그들이 다가올 때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잠시 후 당당한 목소리로 캐시가 ‘Yes’라고 답하는 것이 들렸고 그들 중 한 명이 ‘Why?’라고 물으며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후에 검시관에 발표에 의하면 캐시는 총구가 머리에 닿은 채로 총이 발사되어 즉사하였습니다.
이미 여러 사람을 조금의 꺼리낌도 없이 장난처럼 쏘아 죽인 누군가가 우리의 머리에 뜨거워진 총구를 대고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조금의 주저함도, 두려움도 없이 Yes라도 답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17살의 소녀는 어떻게 이런 담대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이런 신앙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런 도전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의인을 남겨두시는 하나님
우리는 다시 엘리야 선지자의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때는 기원전 862년경 악한 왕 아합이 통치하던 북왕국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으로 3년 전 기근을 예고하고 숨었다가 3년 만에 하나님의 명으로 다시 아합을 만나려고 합니다. 아합 왕은 기근 때문에 가축마저 다 잃게 되자 왕궁 관리장관 오바댜를 불러 마르지 않은 샘을 찾아나섭니다. 이 때 왕궁 관리장관 오바댜를 본문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왕상 18:3)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왕상 18: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이 대목에서 우리는 희망이 사라진 시대의 희망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오바댜를 통해 여호와 신앙을 지키는 선지자 백명을 숨겨두셨습니다. 의인이 다 사라진 아합의 시대에조차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오바댜 같은 이가 있습니다. 그가 숨겨놓은 백 명의 선지자와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불의에 대항하는 엘리야 같은 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빛을 잃고 맛을 잃어가는 우리 시대조차도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의인들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의인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어떤 의인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의인이 되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가장 훌륭한 의인이라면 역시 엘리야겠지요.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목숨을 걸고 악한 왕에게 대항하며 거룩한 싸움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엘리야와 같이 되기에 우리는 너무 연약합니다. 감히 엘리야가 되리라는 생각을 못 합니다. 
오바댜가 숨겨둔 선지자 백 명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묘사가 없어서 어떤 판단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숨어서 때를 기다리는 은둔의 선지자라고 하겠습니다.
아마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는 오바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고 불리고 실제로 큰 위험과 경제적 부담을 무릎쓰며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숨겨주는 의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엘리야의 요구를 듣고는 자신의 안전을 걱정한 나머지 그 요구를 따르기를 주저합니다. 14절입니다. 
(왕상 18:9) 이르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 (왕상 18:14)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말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그가 나를 죽이리이다.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의인들을 숨기는 모험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안위 때문에 더 큰 위험을 무릎 쓰기는 주저하는 인물입니다. 아마 엘리야보다는 훨씬 우리들에게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시간과 돈과 수고를 기꺼이 드리지만 동시에 우리가 소중희 여기는 것을 잃을까 염려 되면 주님의 말씀을 좇기가 주저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던가요? 
 
주저하는 의인
오바댜와 같이 주님을 따르지만 더 큰 위험을 무릎 쓰기는 주저하는 연약한 의인들이 많습니다. 신약에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회 지도급 인사로서 공의회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려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눅 23: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겨왔습니다. 
(요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왜일까요? 자신의 신앙을 드러냈을 때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 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큰 부자에 높은 지위를 가진 그로서는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따르는 것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바뀝니까? 
(막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는 자신의 신앙이 드러나는 것을 무릎 쓰고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해서 장례를 치릅니다. 두려움에 자신의 신앙을 숨기던 아리마대 요셉을 무엇이 신앙을 드러내며 위험을 무릎 쓰는 용기 있는 의인으로 바꾼 것일까요? 다시 요한복음 19장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능력
(요 19:38) … 이 일(십자가 사건)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성경은 요셉이 자신을 드러낸 것이 십자가 사건 직후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무엇인가 그의 마음 속에 있던 두려움과 근심, 비겁함을 모두 날려버린 것입니다. 무엇인가 그를 목숨을 건 위험도 마다않고 신앙의 요구를 좇는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아리마대인 요셉은 예수님이 모진 고초를 겪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묶고 있던 두려움의 족쇄가 풀리는 것을 겪었습니다. 마침내 마음의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뿐 아니라 근심과 두려움에서도 해방시키십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영혼을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묵상할 때 우리를 묶고 있던 모든 족쇄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본 사람들
앞서 소개한 캐시 버널은 사건이 벌어지기 3년 전인 9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 부모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소녀였습니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그녀의 방에서 발견한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는 악마숭배, 술과 마리화나, 자살충동과 시도한 이야기, 낙제를 준 선생을 살해하겠다는 말, 심지어 부모를 죽이는 자세한 계획까지 들어있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부모들은 고민 끝에 경찰에 신고하여 아이를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게 하고 경제적 부담을 무릎 쓰고 기독교사립학교로 전학을 시키고 억지로 교회 중고등부에 등록을 시켰습니다. 그로부터 반항하는 아이와 시작된 힘겹고 길고 긴 전쟁을 캐시 버널의 부모들은 사랑과 인내, 기도로 그러나 동시에 단호함으로 임했습니다. 
힘겨운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 1997년 3월 8일 캐시는 새로 사귄 친구 제이미로부터 초청을 받아 중고등부 수련회에 참석합니다. 제이미는 사건이 벌어진 후 인터뷰에서 수련회에서의 캐시의 모습을 증언했습니다. 찬송시간부터 캐시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울기시작했습니다. 순서 중에 자신의 나쁜 습관과 속박을 끊기 위해 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두 십자가 앞에 내어놓는 시간이 되자 여러 학생들이 주머니와 가방에서 많은 것을 내어놓았는데 캐시는 그 중에도 계속 울고 있었고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 캐시에게 다가와 그녀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내리던 캐시는 엄마를 바라보며 한 번도 보지 못 한 빛나는 얼굴로 ‘엄마, 나 이제 달라졌어. 정말 완전히 변했어.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이제부터 증명해 보일게.’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캐시는 그 날부터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열렬히 원하고 공부하고 성장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악을 향해 달려갔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더 뜨겁게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마침내 죽기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순교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순교는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국 전역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캐시 버널을 따르자’는 운동이 시작되어 틴에이저들이 ‘I believe in God’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전도를 하고 국기게양대 앞에서 기도모임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순교의 신앙을 갖게 됩니다. 순교의 신앙은 불신앙과 두려움의 족쇄를 끊고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희망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아리마대 요셉이 변화되었듯, 캐시 버널의 순교 앞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변화되었듯 오늘 시대의 수많은 방황하는 영혼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거는 순교의 신앙 앞에서 도전을 받고 변화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런 순교의 신앙이 있는지요? 순교의 신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