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8:16-18/오래된 죄의 뿌리

1181209 주일설교 대강절2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지난 주에 한국장로교회 합통측과 통합측을 대표하는 두 개 교회의 부끄러운 소식이 일제히 언론 일면을 장식했습니다. 사랑의교회와 명성교회입니다. 사랑의교회는 오정현 목사가 편법으로 교단에 가입하였기에 담임목사로서의 자격없음을 법원이 판결했다는 것이고 명성교회 역시 편법으로 세습금지규정을 피해갔기에 세습여부를 총회재판국이 다시 재판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명성교회의 경우 총회 헌법이 은퇴하는 목사의 자녀가 후임목사로 청빙되는 것을 세습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는데 명성교회는 은퇴 후 2년이 지나서 아들 목사를 청빙했으니 즉 ‘이미 은퇴한’ 목사의 아들을 청빙했으므로 세습금지규정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었습니다. 즉시 청빙하면 세습인데 2년이 지났으니 세습이 아니라는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억지이며 기가막힌 소리입니까만은 이런 억지를 주장하는 목사와 동조하는 목사, 교인들이 적지않았기에 교회는 세습을 강행하고 노회는 그 세습을 받아주고 총회재판국은 거기에 면죄부를 주는 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총회가 분별이 있어 재판을 다시 하도록 명령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는 또 한 번 상식도 염치도 없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왜 이 정도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교회는 도대체 왜 염치를 모르는 집단이 되고야 만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이 고민의 답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삶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탓하는 인생 
우리는 다시 엘리야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혹독한 가뭄을 예고하고 아합을 칼날을 피해 그릿시내와 사르밧과부 집에서 숨어지내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다시 아합왕을 만나러 갑니다. 오바댜를 통해 아합과 엘리야가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엘리야를 보자마자 아합은 분노에 차서 이스라엘에 닥친 이 가뭄과 재앙을 엘리야의 탓으로 돌립니다. 
(왕상 18: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엘리야 네가 가뭄을 예고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런 재앙을 겪는다는 비난입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답합니다.
(왕상 18: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엘리야는 재앙의 진짜 원인은 자신이 가뭄을 예고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합 집안의 죄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아합의 비난은 마치 폐암 환자가 자기가 아픈 이유를 의사가 수술을 했기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꼴이라고 하겠습니다. 진짜 이유는 환자 자신이 담배를 피워댔기 때문인데 말입니다. 범죄자가 감옥에 갇히 이유를 판사가 징역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진짜 이유는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인데도 말입니다. 의사를 탓하는 환자, 판사를 미워하는 범죄자처럼 진짜 재앙의 이유를 모른 채 다른 이들을 탓하고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범하는지요? 
 
오래 된 죄의 뿌리
그럼 아합집안의 죄는 무엇입니까? 18절을 다시 보면 그것은 아주 오래 된 뿌리깊은 죄입니다. 그것은 아합의 가문이 오래 전부터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왕상 16장으로 가보면 아합과 그의 아버지 오므리의 죄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왕상 16: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 (왕상 16: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왕상 16: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왕상 16: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오므리와 아합 부자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금송아지와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들을 섬기며 그들의 가르침을 쫓았기 때문입니다. 
그 우상들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가나안의 토착신인 바알은 농사의 신, 비의 신, 풍요의 신입니다. 바알신앙의 교리는 간단합니다. 거기에는 영성도, 도덕도, 경건도 없습니다. 바알에게 제물을 많이 바치면 바알이 비를 많이 내려주어 농사가 잘 되고 부자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바알신전의 제사 중에는 항상 대기중인 여사제들 사실상 창녀들과의 잠자리가 포함되어 있어 인간의 탐욕과 정욕을 모두 충족시켜 주는 신앙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알숭배는 그야말로 탐욕과 정욕의 숭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알숭배는 이익을 위해 의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알숭배의 죄는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의 시대에 시작된 죄도 아닙니다. 더 오래 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던 초기부터 이스라엘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으로 여호와께서 강력히 경고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400여 년 전인 사사기 시대로 가 보십시다. 
(삿 2: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바알)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이스라엘 정착 초기부터 바알숭배를 그 땅에서 몰아내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이 이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온 힘을 다해 몰아내지 않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 정착 초기에는 이스라엘의 위세에 눌려 가나안 원주민들과 그 신앙이 죽어지내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회를 얻자 그들이 다시 힘을 얻어 바알숭배를 퍼뜨리기 시작하고 이스라엘에게 옆구리의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되어 재앙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무시하고 탐욕을 좇은 대가를 서서히 그리나 오랫동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힘겹게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뿌리박힌 오래된 죄
명성교회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한국교회의 추락의 이유 역시 어제오늘 잘못한 결과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출발하는 초기부터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죄, 말씀보다 욕심을 우선한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성공과 성장, 풍요를 거룩과 섬김, 희생보다 더 추구해왔습니다. 소위 기복신앙, 성공주의, 물질주의 등 바알신앙을 기독교적 용어로 포장하여 가르치고 추구해 왔습니다. 여호와 대신 바알을, 말씀 대신 욕심을 섬겨온 것입니다. 이익을 위해 의를 저버린 결과 온갖 영적 가뭄이 한국교회 전체를 휩쓸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대신 교회 성장을 구하는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추구하는 세상의 모습이 교회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왔습니다. 그 증상으로 목사와 신도 할 것 없이 온갖 부정과 편법을 두려움 없이 저지르며 예수를 믿는다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LA에 있을 때 한 전도사님이 제게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돈을 벌며 공부를 하다보니 신학교 졸업이 자꾸 늦어져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한국의 어느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주는 총회를 LA에서 연다면서 거기 가면 하루 동안 면접으로 심사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으니 가도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신학교 졸업도 안 한 사람을 아무 시험도 없이 면접으로만 하루 만에 안수를 주느냐고 되물었더니 참가비 3천 불을 내면 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하, 말로만 듣던 안수장사를 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일인당 몇 천 불씩 받고 안수를 파는 것입니다. 무자격 목사를 양산하는 불의의 현장입니다. 아마, 예수님이라면 저주를 퍼부으셨겠지요. 화있을진저, 돈 받고 안수장사하는 인간들이여! 이 독사의 자식들아, 그 전도사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전도사님, 목회를 하루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힘들어도 마칠 공부 마치시고 치를 시험 통과하시고 모든 절차를 다 거쳐서 제대로 목사가 되십시오. 편법으로 된 목사는 목회도 편법으로 합니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이 제게 상담을 하셨습니다. 전주에 한 부부가 왔는데 예배 후에 목사님을 뵙자고 하더니 하는 말이, 자기는 모교회 장로였는데 다니던 교회에 교인 10여 명과 함께 등록을 할테니 1년 후에 자신을 시무장로로 임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3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에 10여 명이 한번에 등록을 한다니 마음이 순간 흔들리더라는 것이지요. ‘목사님, 그 유혹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장로를 임명하셔도 안 되지만 그렇게 온 사람은 100% 교회를 쥐고 흔들려는 것이지, 섬기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순간 유혹이 되더라고요.’ 다음 주에 그 부부에게 시무장로는 교회법을 따라 세우는 것이지, 목사가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더니 얼굴 표정이 싹 바뀌더니 그 다음 주부터 안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 목사님이 유혹을 이기지 못 했다면 그 사람은 두고두고 옆구리의 가시요, 올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사람 보지 않고 하나님 보기로 작정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한국교회가 돈 받고 목사안수를 팔고 장로가 되려고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 곳이 된 것일까요? 오랫동안 교회가 거룩 대신 성공을 숭배해 온 대가입니다. 예수 믿고 돈 벌고 성공한다고 설교하면 교인들 좋아하고 교회도 성장하고 목사도 대접받고 모든 것이 다 잘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기에 속에서 곪아가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성장한 교회의 목사는 130만 원 짜리 출장뷔페로 점심식사를 하고 수십억 씩 비자금을 운용하고 자녀의 회사에 교회 헌금을 빼돌리고 교회법을 어겨가며 세습을 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교회 교인들은 세상사람들이 돈자랑, 학력자랑하듯이 대형교회 교인인 것을 자랑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번 돈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간증하며 세상 부자, 권세자들이 갑질하듯이 장로 되어 위세 부리는 것을 예수 믿는 것인 줄 압니다.
 
삶에 뿌리박힌 오래된 죄
우리 삶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문제, 가정의 문제,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가 어느 날 갑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문제입니까? 건강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의 건강문제는 사실 오랜 생활습관의 결과입니다. 담배를 끊지 않는 이는 폐를 망치고 충분한 휴식을 하지 않으면 간을 상하고 맵고 짠 음식을 즐기면 위장이 상하고 술과 기름진 음식을 즐기면 혈관이 막힌다고 늘 들으면서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을 무시하고 고집대로 행하고, 의를 무시하고 이익을 택하는 오랜 삶의 습관은 우리 삶을 여러 가지 문제 속으로 밀어넣습니다. 그럴 때 아합이 엘리야 원망하듯 어리석은 우리는 진짜 원인을 보지 못 하고 누가 나를 괴롭히나, 세상이 나를 안 도와주나 원망하고는 합니다. 
아합처럼 하면 내 고통의 원인을 남에게 돌릴 수 있으니 당장은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됩니다. 삶을 바꿀 수 없습니다. 구원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엘리야의 꾸지람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내 오랜 부정과 거짓과 게으름과 이기심의 습관과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을 인정하고 갈멜산에서 이스라엘이 한 것처럼 바알의 선지자들을 삶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말씀의 칼날이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수술하도록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우리가 하는 모든 양육과 성경공부는 지식을 늘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말씀의 검이 우리를 수술하시도록 그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엘리야를 탓하는 아합의 모습은 아닙니까? 말씀 앞에 꿇어 엎드린 겸손한 종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