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6:16-29/안식을 믿느냐

190210 주일설교 안식일2
안식이 없는 이유
2차 대전의 전쟁 통에 유럽에서는 많은 고아들이 생겼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각 나라 정부는 고아원을 세워 부모를 잃고 몇 년째 길에서 굶주리며 살아가던 아이들을 수용했습니다. 정부는 많은 예산을 들여서 넉넉한 음식을 제공하고 고아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이들은 빵을 가지고 서로 싸우고 불안해하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관계자들이 회의를 한 결과 오랫동안 굶주렸던 아이들이 오늘은 배가 부르지만 내일 또 굶주릴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가지 조치를 취했더니 상황이 크게 개선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다음 날 아침에 먹을 빵을 자기 전에 미리 나누어 준 것입니다. 그 빵을 품에 안은 아이들은 비로소 안도하며 다투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편안히 잠을 자더라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의 모습이 사실상 우리들의 그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오늘 필요한 양식이 있어도 여전히 내일, 내년 그리고 노후를 염려하며 오늘의 평안을 누리지 못 하며 살지 않습니까? 지난 주에 이어 안식일에 관한 말씀을 살펴봅니다.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며 다만 안식일의 정신을 적용하여 지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명하신 이유는 이 날을 예배와 안식의 날로 삼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 하고 살아갑니다. 그 증거로 우리는 늘 평안을 잃고 불안하고 염려하고 다투고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안식을 주시는데 우리는 그 안식을 못 누리는 것일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일용할 양식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직후 신광야에서 굶주릴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만나를 주시며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잘 드러납니다. 
(출 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 16: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첫째 양식을 하늘에서 비 같이 내려주십니다. 즉 하나님 백성들의 삶은 하늘로부터 오는 은총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수 있도록 주십니다. 주님의 은혜로운 공급은 매일 부족함이 없습니다. 즉 내일을 염려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응답이 곧 그들의 믿음의 진위 여부를 보여준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6일째는 이틀치를 주셔서 7일째에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떨어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먼저 17-18절을 보십시오. 
(출 16: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만나를)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출 16: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하나님의 공급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넘침도 부족함도 없이 일용할 만큼만 주십니다. 왜 일용할 만큼만 주십니까? 내일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내일 것을 오늘 미리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하늘을 바라보지 않겠지요. 당신을 믿고 의지하고 내일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인간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의지하여 평안을 누리기보다 먹을 것을 쌓아놓음으로 걱정을 벗어버리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의 명령을 어깁니다. 
(출 16: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출 16: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왜 그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요? 염려때문입니다. 만나가 오늘은 내렸지만 내일 만약 안 내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먹을 것을 쌓아두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함보다 보이는 양식을 쌓아두는 것이 더 마음이 놓입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부족함 없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 했고 그래서 염려가 생겼으며 양식을 쌓아놓음으로써 염려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입니다. 안식하지 못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과 믿음
하나님은 6일째는 이틀치의 만나를 내려주셔서 7일째 안식해도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출 16:22)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출 16:25)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6일째 두 배로 주셔서 7일째는 안식하여도 먹을 것이 있게 하셨고 7일째 들에 나가 거두려해도 어차피 거둘 것이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신뢰하면 7일째는 일할 필요도 없지만 일해도 얻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존재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쌓여있는 양식을 더 믿는 존재가 아니던가요? 기어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안식일에 거두러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 16:27)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일용할 양식주심을 믿지 못 했던 이들이 모세를 진노케 만들었다면 안식일에 쉬라는 말씀을 믿지 못 했던 이들은 여호와를 진노케 합니다. 
(출 16: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출 16:29)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돌보시리란 약속과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단호한 어조로 강조하십니다. 
 
안식의 적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거듭 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만나를 다음 날까지 쌓아두고 안식일에 먹을 것이 있는데도 또 거두러 나가는 것은 왜일까요? 오늘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 돈을 벌고 모으고 주일까지 온전한 안식을 누리지 못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첫째는 두려움입니다. 오늘 먹을 것이 있어도 내일 먹을 것을 구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둘째는 욕심입니다. 이미 안식일까지 먹을 것이 쌓여있어도 더 많이 쌓기를 원합니다. 쌓인 부가 가져다 줄 힘을 갖기 원합니다. 셋째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데요, 바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실하게 먹이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불신앙 때문에 모세도 여호와 하나님도 진노하셨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진심을 의심하면 화가 나듯이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할 때 하나님도 화가 납니다. 결국 안식을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신앙입니다. 불신앙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보다 은행어카운트를 더 신뢰하고, 불신앙 때문에 염려하고 불신앙 때문에 욕심을 내고 불신앙 때문에 안식하지 못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그리고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것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일용할 양식)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믿음을 가지면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를 얻습니다.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 만나를 미리 쌓아둘 필요가 없듯 내일 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도록 내버려두도 너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참된 안식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참 안식을 누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 때까지 살펴본 것처럼 참 안식이란 단지 주일날 일하지 않는 수준이 아닙니다. 무엇은 해도되고 무엇은 하면 안 되는지 규정하고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써도 되느냐, 취미생활은 되느냐 안 되느냐, 가게문을 열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빠졌던 함정에 빠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참 안식이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누리는 평화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은총으로 산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힘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안식을 누립니다. 일용할 양식을 매일매일 신실하게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래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 안식을 누립니다. 일용할 양식 이상을 구할 필요가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을 더 많이 쌓아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탐욕으로부터 해방되어 안식을 누립니다. 주일에 쉬어도 결코 망하지 않도록 더 넘치게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에도 돈 벌고 공부하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안식을 누립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인해 누리는 이런 평안의 상태가 참 안식입니다. 그런 안식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두려움 없는 주일성수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섬기던 교구 교우님들로부터 이런 고민을 듣습니다. 자녀가 다시 교회 나오게 기도해달라는 겁니다. 언제부터 안 나오냐고 물었더니 고 3 때 공부하는 것이 바빠서 본인도 부담스러워하고 부모도 대학 간 후 다시 나오게 하면 될 것 같아서 교회 안 나가도 된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안 나오고 이젠 말도 안 듣더라는 겁니다. 두려웠던 것이지요. 주일에 공부 안 하고 교회에서 하루 종일 보내면 뒤처질까봐, 좋은 대학 못 갈까봐. 결국 아무 것도 아닌 대학입학과 자녀의 믿음을 바꿔버린 겁니다. 
저는 고3 때도 주일에는 주일 예배 드리고 봉사하고 하루 종일 가족들과 집에서 쉬었습니다. 주일에 공부하는 것보다 예배하고 안식하는 것이 더 유익할 뿐 아니라 유익과 상관없이 성경이 그렇게 가르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부하느라 주일성수를 포기했다고 더 좋은 대학 갔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는 일 때문이라면 더 좋은 대학이 아니라 대학 자체를 포기하더라도 후회할 일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 기독교인이 아닙니까? 
그럼 주일에 출근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만약 주일 근무가 두려움과 욕심때문이라면 이것은 안식일의 정신을 벗어난 것입니다. 다른 동기와 상황이라면 안식의 정신을 더욱 충실하게 지키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동기와 상황입니까? 다음 주에 to be continue… 우리 삶을 책임지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시고 참된 안식을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