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47:6/해방의 하나님

190224 3.1절 기념주일설교
해방의 3.1절
한달 전인 지난 1월 28일 한국에서 한 할머니가 93세의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그녀의 사망소식에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메시지가 나왔고 다음 날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를 조문하였습니다. 인권운동가로도 불린 그녀는 전 세계에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전 세계에 앞장서서 알린 김복동 할머니였습니다. (사진) 그녀는 1941년 열 여섯의 나이로 일본 정신대에 끌려가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갖은 고초를 겪어가며 성노예로 짓밟히다가 일본 패망 후 5년이 지난 1950년에 귀국하였습니다. 1992년 위안부피해자임을 밝히고 27년간 UN인권위원회를 포함 전 세계를 돌며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하였습니다. 그녀를 포함 14만 여명에 이르는 조선인 위안부는 종전 후 약 25%만이 생존하여 귀국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루 말로 다 옮기기 힘든 그녀들의 고통스러웠던 생애는 자유를 빼앗긴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큰 고초를 겪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대한민국의 뿌리
오늘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주일입니다. 100년 전 3.1절 우리 선조들은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여 목숨을 걸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조선총독부 공식기록에는 집회에 참여한 수가 106만여 명인데 이는 당시 인구 1,600여만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5명 중 1명이 거리로 나와 독립을 외쳤던 것입니다. 7,509명이 무력진압과 옥고로 사망하고 47,000여 명이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한국교회와 전세계에 퍼져있는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은 3.1절을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그 이유는 3.1운동정신이 우리 조국 한국의 건국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즉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토대에는 3.1운동의 정신이 깔려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3.1운동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자주독립, 정의, 평등, 평화, 인도주의 등입니다. 이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온갖 문제를 해결할 때 따를 가치라는 말이며 앞으로 우리 민족이 나갈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치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해방을 선포하는 성경
교회가 3.1절을 기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3.1운동을 가능하게 한 정신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독립선언서의 일부입니다.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이 일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을 영위케 함이요…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에 반드시 있어야 할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
하늘의 명령이라는 말은 3.1운동의 정신이 곧 하나님의 뜻이고 그러므로 이 가치는 우리 나라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민족지도자 33인 중 16인이었던 기독교지도자들은 조국의 자주독립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실제 성경은 이 세상의 어떤 민족도 힘으로 다른 민족을 압제해서 안 되며 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하는 절기인 유월절은 곧 애굽에서 노예였던 그들의 조상들이 해방을 맞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 우리로 치자면 광복절 같은 절기입니다. 오늘날의 유대교와 유대인이 형성된 시기라고 보는 때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상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던 그 때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참 이스라엘이 죄와 사망의 포로상태에서 해방됨을 선포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율법서와 선지서와 복음서가 모두 해방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 인류의 역사는 압제에서 해방으로 거스를 수 없는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지난 20세기는 해방의 세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무엇일까요?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입니다. 중남미의 30개국이 스페인어를 쓰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스페인의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나라들이 쓰는 영어 역시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을 비롯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영어권 국가들이 식민지였기 때문에 널리 쓰인 것입니다. 프랑스어를 쓰는 나라들도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해방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피를 흘리고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신의 뜻으로 그들에게 부여된 권리와 사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없이 그저 압제와 착취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압제받고 있는 많은 소수민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독립할 수 있으리라 믿는 이유, 마침내는 해방되리라 우리도 믿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역사의 결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해방을 위해 싸운 선조들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보다 이것을 굳게 믿는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인은 전체 조선인의 1.5%에 불과했지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지도자 33인 중 절반인 16인이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이나 기독교인들이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것이 우연이 아닌 이유입니다. 3.1운동 직후 교회와 기독교인은 시위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지목받아 가장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만세운동으로 수감된 이들의 22%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1919년 4월 15일 2시경, 아리타 토시오(有田俊夫) 일본군 중위와 일단의 일본군은 35명의 제암리 교인들을 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주동하였다는 이유로 교회에 한데 모으고 문을 잠근 후 집중사격을 가해 모두 살해한 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렀습니다. 해외까지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을 비롯해서 강서사천교회 학살사건, 정주교회 학살사건, 강계교회 학살사건, 위원교회 학살사건, 서울 십자가 사형사건, 북간도 노루바위교회 및 서간도 각지교회 학살사건, 정주오산학교 피소사건 등 수많은 교회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작년 초 한국의 한 방송국이 ‘이방인과 3.1운동’이라는 특집프로그램을 방송했습니다. 3.1운동 당시 해외선교사들이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조명한 방송이었습니다. 한 때 비정치화를 표방하며 정치적 개입을 삼가던 선교사들도 3.1운동 당시 조선민중들의 비폭력시위를 잔인하게 진압하는 일제의 만행을 접하며 적극적인 3.1운동 지원에 나섰습니다. 조선을 사랑하여 그 자신을 비롯하여 4대에 걸친 후손들까지 모두 한국이름으로 개명하고 귀화한 원한경 선교사 즉 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는 제암리교회 방화살인사건 현장을 찍은 사진과 함께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여 이 사진이 미 하원 의회록에 게재되게 하였습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가르치고 치료하던 의사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 역시 3.1운동 준비과정을 돕고 제암리교회 사건 자료를 수집하여 캐나다감리교본부에 보고하여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렸습니다. 숭실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E.M.모우리 선교사는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고 4명의 학생들을 숨겨주었다가 발각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1940년 마침내 추방되었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3.1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박해를 기꺼이 받았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 146:7) (여호와는)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해방을 위해 싸우는 성도들
하나님이 정의와 긍휼과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이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정의로운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의와 압제와 족쇄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을 묶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국은 아직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고 북녁땅에는 2,500만의 동포들이 독재와 빈곤, 굶주림에 갇혀 있습니다. 100년 전 목숨을 걸고 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이 한 세기 후에도 당신의 후손들이 이렇게 분단되어 살아가고 그토록 많은 동포들이 독재 아래 신음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을 것입니다. 이 시대 한민족의 사명은 더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통일입니다. 아픈 자식을 두고 행복하게 사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갇힌 형제를 두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이가 어디 있습니까? 신음하는 북한땅의 동포들을 잊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적어도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아니리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오는 수요일과 목요일 베트남에서 있는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기도하는 염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풍요로운 미국과 남한, 자유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적어도 독재와 식민 등 불의한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더 교묘하게 우리를 구속하는 불의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탐욕과 허영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에서 살고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워하는 풍요를 누리고 살아가면서도 더 높은 곳, 더 많은 돈과 물건, 더 큰 성공을 원하며 살아갑니다. 이 탐욕과 허영의 바퀴로 굴러가는 식민지에서 사는 대가로 우리의 영혼은 쉬지를 못 하고 우리는 이웃과 원수가 되고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빈곤과 착취를 벗어나지 못 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3.1운동으로 제국주의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처럼 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탐욕과 허영의 제국주의와 믿음과 기도, 절제와 감사로 싸워야 합니다. 또한 탐욕과 허영의 제도가 이 땅을 점령하지 못 하도록 기도와 실천으로 싸워야 합니다. 풍요로운 미국땅에서 벌어지는 오늘날의 3.1운동은 참된 경건운동에 다름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복음을 듣지못한 채 죄와 사망의 굴레에 갇혀사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싸움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이 싸움은 그 어느 해방전쟁보다 더 오래되고 어렵고 그렇지만 멈춰서는 안 되는 싸움입니다. 영원한 멸망과 해방을 가르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유와 해방을 위한 3.1운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유와 해방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우리는 선조들이 외쳤던 독립만세를 여전히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3.1운동은 계속되고 있습니까? 세상 모든 민족이 하나님이 주시는 해방을 맛보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는 교회와 저와 여러분의 외침이 계속 되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