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25-27/보소서 아들이니이다

190416 고난주간특새 가상칠언3
십자가 아래 제자들
오늘은 십자가상의 세 번째 말씀이다. 이 장면은 여제자들이 십자가 아래 모여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25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의 여동생,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남제자들은 모두 도망갔는데 여제자들은 어떻게 십자가를 지키는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용감해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으나 톰 라이트는 그의 주석에서 레바논의 내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친구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베이루트를 장악하기 위해 싸우는 양측 민병대가 서로를 공격하는 중에 남자들이 무장하고 무리를 짓지 않고서 거리로 나가는 것은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다니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마음껏 거리를 활보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양측 모두 여자들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들의 아내들도 음식을 구하러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시대에도 예수님의 남제자들은 유대인들과 로마군의 체포대상이었으나 여제자들은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 인구조사에도 반영되지 않았을만큼 존중받지 못 했던 여자들이 그 운동을 이어가는 지도자가 되리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6절, 사랑하시는 제자는 남자가 아닌가? 역시 톰 라이트는 그가 어린 청소년이어서 역시 현실적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이제 살펴보겠지만 이 제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성인 남자에게 쓰기 어색한 표현이지만 그가 청소년이었다면 훨씬 이해가 잘 된다. 그가 사도 요한이라면, 그는 1세기 말에 기록된 요한문서의 저자라는 사실과도 부합한다. 
 
인간적인 예수님
이 장면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 예수는 그 분의 이름이며,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직책을 나타낸다. 동시에 예수는 인간으로 오신 분임을 드러낸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드러낸다. 죄를 사하소서, 낙원에 있으리라, 다 이루었다 등의 말씀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하신 말씀이라면 목마르다, 왜 버리셨나이까,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등과 함께 오늘의 이 말씀은 인간 예수로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겠다. 한 인간으로 이 땅에 사시면서 가장 가까웠고 사랑했던 두 사람 바로 육신의 어머니와 가장 사랑한 제자이 당신 곁을 지켜준 감동적인 장면이요,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에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된 순간이라고 하겠다.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먼저 생각해 보자. 다른 복음서에서 마리아는 초기에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 하는 모습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이적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비록 메시야 사명에 대한 이해는 깊지 못 하는 믿음은 깊었던 것으로 소개된다. 
(요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 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은 몰랐지만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으로 소개된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는 각별했을 것이다. 아버지 요셉은 탄생장면과 12살에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후로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요셉이 이름의 언급 없이 목수로 소개된 곳이 마태복음에 한 번 나오지만 마가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아들로만 언급된다. 십자가 사건에도 요셉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찍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어머니의 아들로 소개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막 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아들이 십자가에 그것도 죄없이 달리는 것을 보는 마리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 (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
 
사랑하는 제자
사랑하시는 제자는 누구인가? 성경에 언급은 없지만 교회의 전승은 이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이라고 본다. 어머니처럼 이 제자도 예수님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요 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 13: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요 13: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는 말은 유대인들의 식사습관을 가리킨다. 테이블이 없는 좁은 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식사할 때 서로 겹쳐서 비스듬히 눕기 때문에 가슴 앞에 눕는 형태가 된다. 그는 예수님과 물리적으로도 가깝게 앉았고 수제자 베드로도 묻기 거북스러운 질문을 대신 할 만큼 예수님과 편한 관계였다. 그는 예수님의 빈무덤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무덤으로 달려간 이다. 
(요 20: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또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도 그다. 
(요 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이 복음서를 기록한 이도 바로 이 제자라고 말한다. 
(요 21: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어머니를 부탁함
예수님은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했다. 자신이 더 이상 섬길 수 없는 어머니를 맡긴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이 사건을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로 세움받는 사건이라고 해석하는데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이 사건은 마리아를 요한에게 혹은 이후 요한이 이끌게 될 교회에 부탁하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고통과 더불어 가장 사랑하는 육신의 어머니, 제자와 이별하는 고통을 함께 겪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심으로 찢어지는 이별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으셨을 것이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우리 인간이 겪는 아픔을 다 겪으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우리도 사랑하는 자녀를 잃고 부모를 잃고 배우자를 잃고 친구를 잃지 않는가? 마음은 간절하지만 연약한 육신으로 더 이상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지 못 하는 무기력함에 좌절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님도 그런 좌절을 겪으셨음을 기억하라. 좌절하는 찢어지는 마음을 주님은 이해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어떤 고통스러운 마음이라도 주님께 아뢰면 그 분은 비난하지 않으시고 이해하시고 들으신다. 우리의 고통과 좌절을 다 이해하시는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축복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