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4:1-12/부활의 아침

190421 부활주일
부활의 영광 
할렐루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평화와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일터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일어나신 부활의 아침입니다. 오늘날 지구 위에 발딛고 사는 인류 세 명 중 한 명이 이 부활절 아침을 기념합니다.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이 아침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합니까? 
첫째,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한 아침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22억 인구가 예수라는 한 인물이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둘째,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린 아침이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철학과 종교를 만들어서 온갖 처방을 제시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것과 같이 확실한 길을 찾지 못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의 권세를 해결하셨습니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주님의 부활로 우리를 묶고 있던 죄와 죽음의 권세가 깨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절망을 이길 소망의 아침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직면하고 있는 온갖 절망스러운 상황을 해결할 소망의 메시지를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이를 찾지 못 한 수많은 이들은 허무주의에 빠져서 살아갑니다. 성경은 인류가 찾은 어떤 메시지보다 확실하고도 강력한 소망의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의 근심과 두려움, 절망은 끝나고 우리도 생명의 부활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를 축복드립니다. 
 
근심의 이유
그런데 이 놀라운 부활의 메시지를 저나 여러분이나 처음 들은 것도 아니고 부활절을 처음 맞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실을 들었고 믿었고 소망을 품었는데 왜 일상의 삶 속에서는 그토록 자주 근심과 두려움에 빠져드는 것일까요? 그 답은 첫 부활의 아침 그 영광을 직접 목격한 여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의 주검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이 아침에 무덤으로 향하지만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그녀들이 경험하는 정서를 4-5절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눅 24: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눅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왜 이 부활의 아침에 그녀들은 근심하고 두려워합니까? 그녀들이 하는 일은 두 천사가 이렇게 요약해 줍니다. 
(눅 24:5) …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녀들은 살아계신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주검, 무덤이 우리에게 주는 정서는 근심과 두려움입니다. 모든 사람이 안간힘을 쓰며 이를 피하려 하고 외면하며 살아가지만 결국 아무도 예외없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덤을 향해 하루하루 점점 다가가며 살아갑니다. 짧은 휴가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 휴가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즐기는 동시 안타깝습니다. 우리 인생은 좀 더 긴 휴가에 불과합니다. 이 순간 아무리 즐거워도 휴가가 끝나가듯 인생도 끝나갑니다. 그러니 근심과 두려움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지금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무덤을 향해 걸어가며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천사가 이렇게 알려줍니다. 
(눅 24:6) …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그들은 오늘 이 아침에 영광의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는 말씀을 이미 들었고 그것을 기억해야 마땅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바로 다음 구절이 상기시켜 줍니다. 
(눅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녀들은 부활의 예고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 했고 기억하지도 못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녀들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고도 근심과 두려움을 벗을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성탄과 부활의 복된 메시지를 듣고 믿고 감격하고 새로 결단합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립니다.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돈과 직장과 건강과 신분과 현실의 문제를 마주합니다. 그 문제들은 마치 무덤처럼 우리를 깊은 근심과 두려움, 절망의 늪에 빠뜨립니다. 마치 부활의 메시지를 들어보지도 못 한 사람처럼 죽음의 권세에 짖눌려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천사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해방은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기억의 능력
천사의 말을 들은 여제자들은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8-9절입니다. 
(눅 24: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눅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주님의 말씀을 기억한 그녀들은 비로소 주님의 부활을 믿고 무덤을 떠나갑니다. 무덤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에 사로잡힌 삶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역시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마태복음은 그녀들이 큰 기쁨으로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고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가 근심과 두려움에 짓눌려 살아가는 무덤의 삶으로부터 떠나 생명의 삶으로 들어가려면 그녀들처럼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그 말씀은 우리 삶에서 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눅 24:5) …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우리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되셨고 그 모든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하셨고 그 주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영원히 구원하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부활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압도적인 소망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할 때 그 소망의 영광은 우리를 모든 종류의 절망으로부터 건져줍니다. 우리는 아플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고 꿈을 이루는 데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꿈꾸던 가정을 못 이룰 수도 있고 원하던 직업을 못 가질 수도 있습니다. 더 큰 고난으로 신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고난이 꺾을 수 없는 소망과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 말입니다. 
검소하고 부지런한 사람일수록 번 돈을 절약하려 애쓰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물건을 비싼 가게에서 사면 얼마 차이가 안 나도 얼마나 아까습니까. 투자한 주식이 폭락하면 잠이 안 옵니다. 누가 차를 긁고 가버려 수리비로 몇 백불을 쓰려면 속이 쓰립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연히 동료들과 점심 먹고 나오다가 사놓고 잊어버렸던 로또가 수백만 불 당첨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순간 그는 비싼 물건을 사든 주식이 내려가든 차가 긁혔든 말든 전혀 속상하지가 않습니다. 그냥 싱글벙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가 잃는 돈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돈을 행운으로 얻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세상에서 겪는 고난이 결코 사소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분명 아프고 괴롭고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은 영생의 로또는 이 세상 어떤 로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로또임에 틀림없지 않습니까? 세상 어떤 재물과 성공으로 이 생명의 로또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이 영생의 로또를 맞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성도들은 고난 중에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은 단지 고난 중에도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 이상의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치유와 회복과 구원을 가져옵니다. 믿음과 용기와 열정을 불러일으켜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처럼, 민족을 해방시킨 모세처럼, 수많은 적을 물리친 기드온과 삼백용사처럼 우리를 믿음의 용사로 일으켜 세웁니다. 이 모든 일이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바로 거기서입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근심과 두려움에 눌려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천사의 말씀을 듣고 기억하십시오. 어떤 순간에도 결코 잊지 마십시오. 
(눅 24:5) …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