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1:11-19/하나님의 포도원

190526 주일설교
굶주리는 세상 
한국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활고로 인한 가족동반자살사건 중에서도 도저히 잊을수없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몇년 전 식당일을 하면서 아픈 30대 두 딸을 돌보던 60대 어머니가 봉투에 70만원과 ‘주인 아주머니 공과금 밀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동반자살한 사건입니다. 남편이 암으로 사망한 후 병으로 일을 못 하는 두 딸을 돌보며 식당일로는 도저히 월세와 공과금도 내지 못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빚은 점점 늘어나자 방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세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은 한국의 일만인 것 같지만 미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작년에 뉴욕시에서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택시기사만 플러싱에 살던 한인 김모씨를 포함하여 8명이라고 뉴욕시택시기사연합이 밝혔습니다. 현재 미국의 가계소득의 19% 즉 국가전체소득의 5분의 1은 상위 1%의 부자들이 벌어들입니다. 한쪽에서는 천문학적인 부를 끊임없이 축적하고 한쪽에서는 생활고로 자살을 하는 상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사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합의 살인
지난 주에 이어 나봇살해사건을 계속 살펴봅니다. 땅을 팔라는 아합의 요구를 나봇이 하나님의 법을 근거로 거절하자 이방공주였던 이세벨은 모략을 꾸미고 이스르엘의 장로와 귀족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들은 이세벨의 요구대로 거짓증인 2명을 세워서 나봇을 신성모독죄로 재판에 회부하여 투석형으로 처형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내려갑니다. 나봇이 죽었다고 해도 그의 포도원은 가문의 소유이므로 자동으로 자녀들에게 상속되는 것이 맞지만 상황이 이 정도 되었으면 나봇이 아합을 거역한 대가로 살해당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그 가족들 역시 감히 누구도 왕이 행동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어 아합에게 경고하십니다. 19절입니다. 
(왕상 21: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이런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합과 이세벨이 저지른 살인도 큰 죄이지만 더 나아가 그들이 이스라엘을 지탱해준 기둥,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되도록 해준 법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그 법을 지난 주에 읽은 나봇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왕상 21: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하나님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다른 이에게 팔기를 금하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에 그런 내용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초기 하나님은 원주민들을 쫓아내시고 얻은 땅을 제비 뽑아 먼저 지파별로 나누어 주고 각 지파에서 또 제비 뽑아 가문별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대해 이런 원칙을 세우셨습니다.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토지의 매매를 금하셨습니다. 토지를 포함해 모든 것을 판매하는 자본주의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런 규정이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왜 토지를 사지도, 팔지도 못 하게 하신 것일까? 
 
토지매매가 안 되는 나라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고대의 어떤 왕국과도 다른 방식으로 건국되었습니다. 고대의 모든 나라들은 부와 무력을 선점한 엘리트들이 주도하여 세운 왕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신의 자손 혹은 고귀한 혈통으로 주장하여 부와 권력, 토지를 독점하는 정당성을 확보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을 예로들면 약 2%의 엘리트들이 국가의 토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의 80%를 독점하고 남은 98%의 백성들이 남은 20%의 자원을 나누어 가지며 생존을 겨우 이어가는 사회였다고 합니다. 흔히 현대사회를 20%의 엘리트가 80%의 자원을 독점하는 시대라고 2080시대라고 하는데 고대사회는 2%가 80%를 독점하는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구체제의 모순타파를 명분으로 내건 혁명세력이 나라를 세운 경우 가끔 토지개혁같은 시도가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건국공신들은 초기부터 엄청난 특권을 부여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토지를 백성들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빼앗아 결국 구체제와 다를바없는 시대로 돌아가기 일쑤였습니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건국한 조선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엘리트들이 세운 나라가 아닙니다. 물론 모세와 여호수아라는 불세출의 영웅들이 있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다른 나라의 엘리트처럼 부와 권력, 특권을 누리지도 상속하지도 못 합니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고생고생 온갖 고생을 다하며 광야를 통과하도록 이스라엘을 이끌고도 정작 목표인 가나안은 밟아보지도 못 하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오늘날 요르단 땅 느보산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그런 영웅이었음에도 아무런 특권을 누리지 못 합니다. 가나안 정복의 영웅 여호수아는 목숨을 걸고 가나안 정복전쟁을 지휘하였지만 다른 가문이 받듯이 똑같이 자기가 살 땅을 분배받은 것 외에 특별히 더 받은 땅도 없고 누린 권력도 없습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지도력을 행사했지만 죽은 후 그의 아들 역시 아버지의 지도력을 이어받지 못 합니다. 성경 좀 읽었다는 분들 중에 모세나 여호수아의 아들 이름을 아시는 분 있나요? 그나마 여호수아가 누린 혜택이 있다면 다른 가문들은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받았는데 여호수아는 자신이 원한 땅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해준 것 정도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건국영웅들이 다른 고대왕국처럼 부와 특권, 권력을 독점하고 대를 이어 상속하지 못 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그들 영웅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누가 세웠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는 한 부족장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그의 자손들을 불러내심으로 시작됩니다. 그 자손들은 떠돌이들이란 뜻의 히브루라고 불렸고 그래서 지금까지 히브리인이라고 불립니다. 하나님은 그 천민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그들에게 가나안땅을 주셨고 그들이 지킬 법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운 나라가 이스라엘이고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어떤 영웅이나 엘리트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나라
이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인류와 전 피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여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나라를 만드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거역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애초 하나님의 창조에 잘 드러나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류에게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인류와 피조세계가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복,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복지라고 그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복지란 안전과 건강, 안락과 윤택함이 어우려져 행복을 누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그 후손들의 죄는 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 하도록 세상을 파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파괴된 세상을 심판하시고 아담을 대신하는 인류의 시조 노아를 통해 새로운 인류와 세상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 역시 바벨탑 사건처럼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복이 실현되지 못 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 번째 시조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후손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 즉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 나라는 무엇보다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고대농경사회에서 이 복지를 누리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땅, 토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앞세워 가나안을 정복하신 후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제비를 뽑아 가나안 땅을 모든 지파에게, 각 지파 안에서는 모든 가문에게 분배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를 읽어보시면 1-12장까지는 가나안 정복을 소개하고 이어서 13-21장까지는 그 땅을 분배하는 이야기입니다. 9장에 걸쳐서 자세하게 어느 지파에게 어느 땅이 분배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분배로 인해 이스라엘은 인류역사에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는 이상사회를 세웁니다. 그것은 모든 구성원들이 단 한 집안도 예외없이 자신들이 살 집과 개간할 토지를 갖게 된 나라입니다. 인류역사에서 지위고하 출신을 막론하고 모든 집안이 자신들의 땅을 소유한 시대, 나라, 지역이 단 한 곳이라도 있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고대사회는 2-3%의 지배층이 7-80%의 토지를 독점한 사회였습니다. 지배층도 특권층도 없고 부와 권력의 대물림도 없고 모든 백성들이 자신이 살 집과 생산수단인 토지를 소유한 세상, 인류 역사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세상이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독점이 없는 나라 
그러나 인간의 악한 본성은 하나님이 주신 가문의 땅으로 만족하지 못 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주변왕국들이 그러하듯 힘이 센 사람들과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웃의 토지를 사든지 사기를 치든지 어떻게든 빼앗으리라는 것과 땅을 빼앗기면 곧 그들은 빈민으로 전락하여 다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지를 누릴 수 없게 될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백성이 욕심많은 엘리트들에게 복을 빼앗기지 않고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 가지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 첫째가 바로 토지매매금지법이고 둘째는 토지소유권과 자유로운 신분을 회복하는 희년법입니다. 토지매매금지법을 다시 보십시오.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 땅을 분배받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임대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소유권을 다른 이에게 넘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합같은 권력자라도 나봇같은 서민의 땅을 뺏지 못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합이 나봇에게서 빼앗은 것은 사실상 나봇의 포도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포도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대세계에서는 빚을 못 갚으면 땅을 뺏기고 그것으로도 안 되면 노동으로 갚는 노예가 되는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게으르고 노름을 하고 혹은 무슨 잘못을 해서 땅을 뺏기고 노예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그 자식들은 무슨 죄입니까?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노예고 땅은 한 뼘도 없습니다. 고대왕국에서 그런 이는 역시 노예로 살아야하고 그들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쪽에서는 부와 권력과 특권이, 다른 한쪽에서는 가난과 억압과 고통이 대물림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두 번째 법이 희년법입니다. 
(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禧年)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everyone will receive back their original property)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slaves will return home to their families)
희년이 되면 빼앗겼던 가문의 토지를 되찾고 잃었던 자유인의 신분을 되찾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 세대의 가난과 신분추락이 적어도 다음 세대를 넘기지 않고 회복됩니다. 즉 모두가 50년마다 한 번씩 뺏은 것도 뺏긴 것도 다 털고 동일한 출발선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아니, 그럼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제 땅을 사지도 팔지도 않아야 한단 말씀인가요? 이 두 법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다음 주에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확인하고 넘어갈 것은 하나님의 이 법을 지키면 모든 백성들이 부족함없는 복지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입니다. 
(신 15: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무슨 명령입니까? 바로 이 토지매매와 희년의 법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착하게 살면 가난한 자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제도를 지키면 모든 백성들이 복지를 누리며 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런 의가 실현되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사렛에서 공생애 첫회당설교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The year of grace:희년)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이 희년을 다시 선포하러 오셨다면 오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들의 사명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희년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