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1/천국의 잔치

100418 주일설교 전교우연합예배
기쁨이 가득한 구원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놀라운 평화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히스패닉부서, EM, 청년부, 교육부, 장년부 여러분 모두에게 흘러넘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잔치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탕자를 되찾은 아버지도, 양을 되찾은 목자도, 드라크마를 되찾은 여인도 잔치를 벌이고 왕과 귀인은 아들의 결혼잔치를 엽니다. 계시록에서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벌어집니다. 또 당신이 직접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셨습니다. 나사로의 집에서 연 잔치에 가셨고 바리새인들이 연 잔치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나혼인잔치는 예수님이 참석하셨다고 복음서가 기록하는 첫 번째 잔치입니다. 이 많은 잔치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나라의 구원입니다. 이 세상잔치가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가리키는 이유는 그 잔치가 가진 즐거움 때문입니다. 구원은 참된 기쁨의 사건입니다. 그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입니다. 
 
기쁨이 바닥난 인생
세상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처럼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요 2:3)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최소 1주일 이상 계속 되는 팔레스틴의 결혼잔치에는 술과 음식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 잔치에 술이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인생에도 기쁨이 바닥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구하며 삽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부가 기대하는 것이나 졸업생들이 미래를 꿈꿀 때 기대하는 것이나 새 차를 위해 큰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기대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그 행복이란 대개 마음이 기쁜 상태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곁에 잠든 남자가 과연 데이트하던 그 사람이 맞나 의심스럽고 사회생활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새 차 문짝을 누군가가 긁고 도망쳐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쁨을 주리라 기대할 만한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술과 마약, 성과 스포츠에 중독되고 노예가 될까요? 그 쾌락들이 기쁨인 줄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기쁨의 짝퉁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사람들은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사실상 참 된 기쁨에 목말라 아우성치고 있는 것인데 점점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쾌락으로 목을 축이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간절히 기쁨을 찾으나 결코 찾을 수 없는 기쁨이 바닥 나버린 인생인 것입니다. 
 
참된 기쁨을 주시는 분
우리 인생에 참된 기쁨을 채워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7-9절을 보십시오. 
(요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요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서 그 잔치집에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맛없는 우리 인생을 달콤하고 향기로운 포도주 같은 인생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기쁨이 바닥 난 우리 인생에 진정한 기쁨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의 죄짐을 대신 지심으로 죄인들에게 기쁨을 주셨고, 무죄한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셨고, 하늘의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써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 분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을 맛봅니다. 
 
세상 것과 다른 기쁨
이 기쁨은 유사품과 결코 같지 않은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요 2:10)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님이 만들어 주신 포도주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포도주와도 비교할 수 없이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되고 영원한 기쁨이란 뜻입니다. 이 기쁨을 맛본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더 이상 예전의 그것과 같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 주님을 믿고 성령세례를 경험했을 때 절망의 어둠으로 캄캄하던 세상이 갑자기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찬 소망의 세상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밤하늘의 별들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비로소 깨닫고 길가던 사람 하나 하나를 모두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충만한 기쁨이 흘러넘쳤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특징은 또한 차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요 2:6)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두세 통이 드는 항아리는 45리터가 넘는 크기입니다. 이런 항아리가 6개입니다. 아무리 결혼잔치가 1주일, 열흘을 간다 해도 그런 잔치를 몇 번씩 치르고도 남는 엄청난 양의 포도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 인생이 다가도록 마시고 마셔도 마를 일이 없는 충만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기쁨을 전하라
이런 기쁨을 맛본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이 기쁨을 전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이 하인들은 손님들을 돌려보내야할 위기에 처한 잔치를 구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세상에 기쁨을 전하는 기쁨을 누렸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혼자 누리고 있노라면 점점 사그라들지만 나누고 전하면 점점 배가됩니다. 
우리 교회는 일년에 한 번씩 전 교인이 한 자리에 모여 잔치를 합니다. 이 잔치를 통해 우리는 희미하게나마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배웁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랑과 섬김으로 잔치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삶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그 구원의 삶에는 즐거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 구원의 삶을 누린 사람은 그 기쁨을 세상에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천국의 포도주를 마시고 넘치는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주님의 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