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1/창세기는 역사인가

주일설교 190630 성경변증2
창세기는 역사인가
지난 주에 이어 성경의 진리됨에 대해 살펴봅니다. 오늘도 지난 번에 소개드린 교우님의 질문 중 하나로 시작합니다. 
‘예전부터 창세기를 읽으면 아담과 하와 두 사람으로부터 어떻게 인류가 생성되고, 번성되었는지가 궁금했어요. 주변에 물어보면 그때는 할수없이 형제 자매끼리 결혼했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럼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이 한동안은 근친상간을 통해 인류를 번성해왔다고 봐야하나요? 그럼 그때는 가족간 결혼에 의해 발생되는 유전병은 없었던건지. 중세유럽에 근친결혼으로 많은 유전질환이 생겨났다는데… 짧게 소개되는 인류 창조와 번성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창세기를 읽으며 떠올리는 수많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중 하나입니다. 먼저 중세교부 어거스틴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래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당신같은 이들을 위해 몽둥이를 준비하셨다’는 말로 그들의 입을 막았다고 합니다. 
한편 유대교 랍비들은 구체적인 답을 줍니다. 그들은 아담과 하와에게 창세기에 기록된 가인, 아벨, 셋의 세 아들 외에 딸이 하나 더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을 담은 책 중 희년서는 아완이라는 딸이, 아담의 유언이라는 책은 레브다는 딸이 그리고 보물의 동굴이라는 책은 켈리마라는 딸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딸이 있었던 것이 맞느냐? 어느 것이 진짜 그녀의 이름이냐? 답은 모른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권위자들인 어거스틴과 랍비들의 대답이 여러분의 의문을 말끔이 해소해줍니까? 아마 해소되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은 누구를 찾아가도 속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흔히 구약성경 창세기 1-11장을 흔히 원역사라고 부릅니다. 세상창조, 타락, 대홍수 그리고 바벨탑 사건을 다루는데요, 이 본문을 읽으면 위와같이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이 쏟아져나옵니다. 이런 질문들의 핵심은 창세기가 정말 기록된 그대로의 사실이냐 즉 창세기는 역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창세기를 믿느냐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역사라고 그대로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6일의 창조와 아담의 창조와 그와 자손들의 나이를 계산해서 더하면 약 6천 여년이 나와서 소위 우주창조 6천 년 설을 비롯한 젊은 지구론이 나왔습니다.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은 앞서 유대교 랍비들이 시도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가설들을 내놓았고 창조과학회 같은 단체들이 그 선봉에 섰습니다. 최근 연구를 통해 창세기의 기록과 근동의 여러 신화들과의 일부 유사한 요소들이 알려졌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공통된 경험에서 오는 기억의 유사성으로 설명합니다. 즉 창세기의 창조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신화의 유사성, 노아의 홍수와 길가메시 서사시의 홍수설화의 유사성이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과 수메르 문명이 실제 있었던 고대의 사건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진보적인 교회일수록 창세기의 원역사를 상징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수메르 문명의 고대신화의 영향을 이스라엘이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하고 고백한 여호와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고대 근동의 지배적이던 수메르 문명의 신화 즉 세계관을 차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창세기와 수메르 신화의 유사성,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원역사의 문제들을 고려할 때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문자 그대로의 믿음을 강조하는 이들은 창세기의 원역사를 상징으로 받아들이면 성경 전체의 역사성이 함께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역사성을 포기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증명할 수 있느냐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 원역사를 대할 때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오해를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창조의 방식과 순서가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느냐, 가인은 누구와 결혼해서 후손을 만들었느냐, 전 지구적 홍수가 가능하냐, 길가메시 서사시와 닮았느냐 아니냐를 물을 때에는 이런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즉 창세기 원역사를 과학적,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없다면 허구다, 허구라면 성경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전제가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원역사는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과학회의 주장처럼 우주의 나이가 6천 년이든 빅뱅이론의 주장처럼 137억 년이든 우주가 탄생할 때 누가 그 옆에서 지켜본 이가 있었습니까? 녹화한 사람이 있었나요? 에덴 동산이 어딘지를 찾아서 성경의 묘사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가인이 누구와 결혼했는지 그 여자의 이름이 아완인지, 레브단지 혹은 켈리마인지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까?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입니까?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증명이라는 방식은 물리적 세계의 실체를 이해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비물리적 세계는 증명이라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랑과 공의와 의리와 믿음과 신념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므로 증명할 수 없지만 그 실체를 부정하는 있습니까? 우주의 기원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빅뱅이론이 왜 이론입니까? 증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론입니다. 증명이란 반복관찰이나 반복실험을 통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우주의 기원을 관찰할 수 있습니까, 실험할 수 있습니까? 단지 현재 우주를 관찰하고 추론해볼 때 빅뱅이론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가장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증명할 수는 없지만 잠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동설이 나오기 전까지 천동설도 그 당시 과학적 관찰과 가장 부합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빅뱅이론도 앞으로 또 다른 이론으로 대체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장 과학적인 설명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빅뱅이론은 1930년대 카톨릭 사제이자 천문학자인 벨기에인 조르주 르메트르가 처음 발표했습니다. 그의 이론을 사실 기존의 물리학자들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우주가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점엔가 시작이 있고 그와함께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었다는 설명이 기독교의 창조론과 매우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빅뱅이론이 창조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빅뱅이론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폭발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것만 설명할 뿐 왜 폭발이 일어났는지, 그 에너지는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지 못 합니다. 그 질문의 답은 모른다입니다. 즉 우주의 기원은 현재로서는 과학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원역사는 바로 그 과학적 설명 너머에 있는 우주의 기원을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 증명이 안 되었으니 못 믿겠다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지난 주에 설명드린 것처럼 성경은 과학책도, 역사책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혹 창세기 원역사를 증명할 수 없으면 성경 전체의 역사성이 부정됩니까? 성경 66권은 기록된 시기와 방식에서 다양합니다. 창세기 원역사와 달리 구약역사서는 다른 고대왕국의 역사서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조선과 고려의 역사를 읽고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시대를 읽듯이 구약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역사는 신앙고백으로 기억된 역사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신약의 경우는 증인들의 기록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랐고 골고다에 달리고 부활하시는 것을 보고 증언한 이들과 그 증언을 들은 이들의 기록입니다. 창세기 원역사가 증명의 영역 밖의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증인에 의해 기록된 다른 성경까지 역사 밖의 기록이라고 평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신화가 아니냐
창세기가 고대 근동 수메르 문명의 신화와 유사점이 많다고 하여 그 신화들과 같은 고대신화일 뿐 아니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기독교인 중에서도 창세기 원역사가 수메르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창세기를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성경으로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기록될 당시 시대상황과 세계관, 기록자의 경험과 가치관이 다 묻어있습니다. 성경을 진공상태에서 뚝 떨어뜨려주시거나 기계처럼 받아쓰게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기록자에게 계시를 주셨다면 사뭇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21세기가 과학의 시대라면 구약이 전승, 기록되던 기원전은 신화의 시대입니다. 그 당시에는 과학도, 역사도 모두 신화적 세계관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 당시 신화는 요즘말로 하자면 세상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최첨단의 학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 계시를 기록하던 이들에게 하나님과 세계가 신화적 방식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신화적 방식으로 기록되었다고 해서 그 신앙고백이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시편은 시라는 형식으로 기록되었지만 시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허구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계시된 역사
창세기의 원역사는 수메르 신화와 유사한 점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바로 계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에누마 엘리시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창조신화에서 신들은 인간을 신들을 섬기는 종으로 창조하여서 그 덕분에 신들이 쉴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은 신들에게 안식을 제공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여호와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창조의 목적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처럼 창세기는 신화적 형식을 이용했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계시란 무엇입니까? 바로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가치, 고통의 이유와 소망의 이유입니다. 
왜 세상이 무가 아니라 유인가? 300년 전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아무 것도 없는 무가 무언가 존재하는 유보다 더 자연스러운 상태이기에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존재하는 상태라는 것은 합당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물리학자도 생물학자도 천체과학자도 이에 답하지 못 합니다. 아직 이것은 철학자들의 영역이라고 하는데 철학자들도 질문만 할 뿐 답을 하지 못 합니다. 누가 답을 합니까? 오직 성경만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 기원에 대해 답을 줍니다. 선하시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의 기원이시며 그 분의 의지가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입니다. 
인간의 기원과 가치는 어떤 과학도 설명하지도, 제공하지 못 합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끝도없는 천둥번개의 전기적 자극 때문에 무기물이 우연히 결합하여 유기물로 전환되더니 아메바 같은 단세포에서 다세포생물로, 원숭이에서 진화한 존재라는 것이고, 그 가치란 우연이라는 말이 설명해주듯 운 좋게 다른 생물보다 더 지능이 높게 진화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그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 단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도, 그의 능력이나 지위나 성별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온 세상보다 더 귀한 존재라고 유일하게 선언하십니다. 
세상의 고통은 운이 나빠서나 자연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죄가 세상에 들어와 인간을 타락시킨 것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병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면 환자를 고치기는커녕 더 고통스럽게할 뿐인 것처럼 세상 고통과 불의의 원인이 인간의 죄 때문인 것을 정확히 알지 못 하면 그릇된 처방으로 세상을 더욱 망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의 계시는 세상을 고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또한 병든 세상조차도 선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되고 있으며 마침내는 사랑과 공의가 다스리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로 회복될 것임을 창세기는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소망이자 믿음입니다. 
창세기는 분명 과학책도, 역사책도 아니며 그것을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길도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믿음으로 고백된 역사이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어떤 과학책이나 역사책보다 더 중요한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기원이자 생명의 기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우리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병든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고칠 소망을 품습니다. 이 창세기를 통해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