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복음서는 역사인가

190707 주일설교 성경변증3
예수님 사건은 신화인가
한 교우님의 질문 일부를 오늘도 읽고 시작합니다. 
‘목사님,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님의 기록이 이집트의 호루스 신을 비롯한 다양한 고대 신화의 구성을 차용했다는 주장, 타 종교들에도 예수님과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주장, 유명한 태양신 이야기, 전세계에 퍼져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신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마 이런 내용은 인터넷에 시대정신이란 제목으로 떠다니는 영상자료를 통해 널리 알려진 듯 합니다. 그 영상은 주장하기를, 이집트의 오리시스, 아도니스 등의 신화와 그리스도의 디오니소스 등의 신화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애와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신화의 역사는 예수님 사건이 일어난 기원전 2천 년 전에 발생한 것이니 결국 이 신화들의 영향을 받아서 제자들이 실제와 상관없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으신지요? 들으셨다면 이 주장들에 대해 뭐라 답하시겠습니까? 
오늘은 3주째 성경이 과연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진리인지의 문제를 살펴 봅니다. 지난 주에 창세기를 살펴본 데 이어 오늘은 복음서가 과연 역사적 기록으로 믿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복음서의 핵심은 역시 예수님의 생애와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입니다. 이 예수님의 행적의 역사성을 부인하려는 시도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근동신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역사적 예수님의 모습은 성경의 기록과 많이 다르다, 예수님에 관한 기록은 정치적 목적으로 편집되었다 등의 도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화의 모방인가
먼저 예수님 사건이 고대근동신화들의 영향을 받은 창작물이라는 주장을 살펴봅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과연 그 신화들의 죽었다가 부활한 신들의 이야기가 출현한 것이 예수님 사건 이전이냐, 이후냐 하는 것입니다. 
버지니아주 리버티유니버시티 철학부학과장인 게리 하버마스 박사는 부활사건과 신화 등을 주제로 1975년 이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발간된 책과 논문의 저자 1,200명의 주장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근동고대신화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학자들은 이 중 채 5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1,195명은 그럴 가능성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신화의 발생시기가 예수님 사건 이전이 아니라 이후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앞서 언급한 오리시스, 아도니스 혹은 디오니소스 등의 신화는 물론 기원전부터 존재했지만 거기에는 그 신들의 죽음과 부활의 내용이 없습니다. 그들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내용의 신화기록은 가장 오래 된 것이라도 기원후 4세기 이후의 문서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하바마스 박사는 고대신화가 예수님의 부활사건의 원형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인 스켑틱매거진 편집자인 팀 캘러한과의 대담에서 부활한 신에 대해 다루는, 가장 오래 된 이집트와 그리스의 신화의 기록이 언제인지를 묻지만 팀 캘러한은 기록시기를 알 수 없다고 답합니다. 하버마스는 가장 오래 된 기록이 기원후 4세기 경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즉 여러 이방신화들은 예수님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 신화들에 죽음과 부활사건이 더해진 것은 예수님 사건이 일어난지 4세기가 지난 후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신화들에게서 예수님 사건이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 사건에게서 그 신화들이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시대정신 같은 영상들은 이런 시기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유사성만을 부각하여 마치 예수님 사건이 신화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인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것입니다. 
 
신화화 되었는가
또 한 가지 도전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 즉 실제 예수님의 행적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기록과 많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실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거나 부활하거나 승천하신 적이 없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신화화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화의 포장을 벗겨내고 실제 역사적 예수님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이끌고 대중에 널리 알린 것은 1985년 시작되어 언론에 널리 퍼진 ‘예수세미나-The Jesus Seminar’와 소설가 대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 등입니다. 이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도 20%만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고 80%는 제자들이 첨가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또한 복음서 역시 기원후 4세기 말 로마의 콘스탄틴황제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신성을 강조하는 책들만 정경으로 확정하고 인성을 강조하는 책들을 제거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신약성경 기록시기와 내용, 정경화 시기를 살펴보면 설득력을 잃습니다.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기록이 시작된 바울 서신의 경우 약 50-60여년 경이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에서 25년 이후이고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의 경우에도 8-90년 경이니 45년에서 55년 후입니다. 15년이면 2002년 월드컵 사건보다 더 오래 되지 않은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자, 지금 제가 2002년 월드컵을 왜곡하면 얼마나 왜곡할 수 있으며 과장하면 얼마나 과장할 수 있을까요? 온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을 무슨 수로 왜곡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 사건은 당시 유대인들 중 모르는 이들이 없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왜곡된 주장은 그러므로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생생하게 현장을 기억하는 이들에 의해 도태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서신서와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예수님의 생전의 행적을 직접 눈으로 본 이들과 그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들은 이들이 모두 살아있던 시절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가 예수님의 행적을 과장, 왜곡, 신화화 했다면 그 문서는 그들에 의해 부정되고 교회에서 거부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예수세미나가 번역하여 퍼뜨린 도마복음서와 같은 영지주의 문서들은 교회에서 거부되었습니다. 그에반해 4복음서와 서신서들이 교회에 의해 수용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기록들이 목격자들과 증언자들의 기억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도마복음의 경우 고대 시리아에서 175년 이후에 기록된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보다 100년도 더 늦게 기록된 문서를 근거로 성경의 증언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닙니까? 오늘날 예수세미나와 같이 복음서의 역사성을 부정하려는 이들은 수백년 역사를 통해 교회가 비역사적이라는 결론을 내려서 거부했으며 훨씬 후대에 기록된 문서를 가지고 교회가 역사적이라고 평가하여 받아들였고 가장 일찍 기록된 문서를 부정하려는 말도안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인 애덤 고프닉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영지주의 복음은 시기적으로 너무나 늦게 씌어져서 기독교 신앙을 흔들 수 없다. 이는 마치 18세기 영국 조지왕을 옹호하겠답시고 19세기 미국 오하이오에서 작성된 문서가 미국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 수 없는 것과 같다.’
신약성경을 325년 콘스탄틴 황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인성을 주장하는 파를 억압하고 신성을 주장하는 파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현재와 같이 만들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의 왜곡입니다. 교회는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공의회를 열기 전에 이미 현재와 같은 27권의 신약문서목록을 만들어 권위있는 예수님에 관한 증언으로 정리해 두었으며 이 문서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신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원 후 160년 경 리옹의 교부 이레니우스는 4복음서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참된 문서라고 선언했으며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27권의 신약성경목록을 정경으로 가치있는 문서라고 부활절 편지에 쓰고 있습니다. 즉 콘스탄틴 황제가 정경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이미 정리한 정경을 콘스탄틴 황제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창작했는가
예수세미나의 참가자들이나 댄 브라운 같은 대중작가들은 복음서의 기록이 제자들의 창작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스승을 숭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실제 예수님의 행적보다 더 과장하여서 하지 않은 말씀과 일어나지 않은 기적사건을 첨가하고 십자가 죽음이 주는 충격을 극복하고자 부활, 승천했다는 주장을 퍼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고서 제자들의 삶과 기록을 보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첫째, 제자들의 동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조사의 첫걸음은 동기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동기는 사건의 발생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제자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스승에 관한 신화를 만들어냈을까요? 여기에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확실한 동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기로 결정한 거짓말이 믿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났다는 거짓말입니다. 그것도 혼자 본 것이 아니라 열두 제자와 여러 여제자와 심지어 5백여 성도들이 함께 봤다고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라다닌 자신들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함이었을까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함으로써 그들이 누리게 될 제자로서의 영화였을까요? 무엇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동기설명이 안 됩니다. 백보양보해서 그들의 믿음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가정을 하십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후 행적을 보면 더더욱 신화화라는 주장이 설득이 안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듣지않은 예수님의 말씀과 보지 않은 예수님의 행적과 겪지 않은 부활을 겪었다고 거짓말을 한 대가로 영화를 누린 것이 아니라 모진 고초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 고초와 순교를 겪으면서도 그들은 그 거짓말을 철회하지도 폭로하지도 않았습니다.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형장의 이슬로 순교를 당한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잡혀가시는 것만 보고도 모두 도망쳤던 겁장이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왜 거짓말을 끝까지 진실이라고 우기기 위해 목숨을 바칠까요? 예수님의 행적이 신화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면 제자들의 동기와 행적 모두 설명이 안 됩니다. 
셋째, 그들의 주장도 설명이 안 됩니다.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 사건은 당시 로마사회문화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치를 떨고 더할수없는 모욕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가장 흉악한 범죄자가 당하는 일을 왜 그들의 주와 스승이 겪었다고 꾸밀까요? 꾸밀 거라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고 빼야맞지 않을까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비통해하며 십자가를 피할 수 없냐고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 왜 나를 버렸느냐고 십자가상에서 절규하는 모습을 일부러 집어넣을 제정신이 박힌 창작자가 있겠습니까? 더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들의 주를 꾸며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위가 너무 낮아 법정에서 그 증언이 채택되지 않던 여자를 하필 부활의 첫 증인으로 꾸미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초대교회의 리더였던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려고 싸우고 그들 중에서 예수님을 판 배신자가 나오고 스승을 버리고 모두 도망한 비겁자들이었다는 거짓말을 그들이 왜 지어낼까요? 반대로 창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더구나 초대교회의 최고 리더였던 베드로를 스승을 저주하기까지 부인한 배신자라고 묘사하다니요. 이 제자들의 주장을 같은 전파자였던 사도 바울조차 유대인에게는 거슬리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을 훌륭하게 속여서 자신들의 믿음을 받아들이게 만들 목적이라면 그들 모두는 아니라도 적어도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한 쪽은 받아들일만하게 꾸며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모든 모순들은 제자들이 예수님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창작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부족한 비합리적인 주장인지를 고발합니다. 이런 모순들은 한 가지를 전제할 때만 말끔이 해결됩니다. 즉 제자들이 그들이 정말 보고 듣고 경험하고 겪은 것을 증언했다는 전제 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보고싶은 것을 보고 듣고싶은 것을 듣는 묻지마신앙이 아닙니다. 그들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채 한 세대로 지나지않은 시점에 자신들의 평판에 불리한 사실까지도 가감없이 모두 기록하고 그 기록이 참됨을 자신들의 목숨을 바친 헌신적 삶으로 증명한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믿는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복음서의 증언을 읽어보면 그 증언의 참됨을 부정할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증언이요, 성경을 읽고 삶이 변화되고 구원받은 이들의 증언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님을 만나보셨습니까? 제자들이 만났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