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tagged with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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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결박을 푸는 능력 / 행 16: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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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6:22-26/결박을 푸는 능력 181118 추수감사주일 고난 중의 감사  제가 아는 어느 교우님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검사결과 장에서 큰 혹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의사 말이, 그대로 두면 암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을 해서 제거해야 한다고 했는데 교우님이 너무나 태연하게 ‘네, 그럼 수술받지요.’라고 답하니까 의사가 의아해 하더랍니다. ‘그래도 수술을 받는 건데 걱정이 안 […]

20181104 나그네들의 교회 / 신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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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0:19/나그네들의 교회 181104 주일설교 난민과 이민자 <영상> 이번 주 토요일 저녁 7시에 팔팍하이스쿨 강당에서 우리교회 청년부와 이민자보호교회네트워크가 함께 요셉이란 제목으로 연극공연을 합니다. 오늘날 이민자 문제는 난민문제와 함께 세계 각국에서 대두되는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입니다. 유럽은 원래 이민자와 난민들이 많이 들어와 사는 지역이었습니다만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을 피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기 시작한 수십 만의 난민들로 인해 전에 없던 난감한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도 이민자와 난민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캐러밴이라 불리는 온두라스 등 중남미에서 빈곤과 폭력, 마약사태 등으로 탈출하여 미국으로 향하는 이주자 행렬이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한국은 무풍지대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만 최근 들어 다문화가정,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난민사태 등으로 더 이상 남의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있습니다. 한편 미얀마 정부의 박해를 피해 떠돌아다니는 로힝야족 사태는 난민문제가 선진국의 것만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사실상 전 세계가 지구촌이 되어 교통과 통신으로 연결되고 한 쪽에는 안전과 풍요가, 다른 쪽에는 내전과 빈곤이 존재하는 한 그 어느 나라도 난민과 이민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우리교회 청년부와 이민자보호교회네트워크가 이민자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연극을 올린 것일까요? 교회는 이 문제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마땅할까요? 이 문제는 국가와 지역, 문화와 개별사례마다 많은 차이가 있기에 이것만이 정답이라거나 저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일반화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시간에는 성경과 교회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시는바 이 문제를 향해 교회가 취해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한인 이민자 교회 우리교회 청년부나 이민자보호교회네트워크에 속한 한인교회들은 왜 이런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것입니까? 그 첫째 이유는 우리 한인교회는 곧 이민자들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이민자이거나 난민입니다. 이민이란 국제연합에서 정의하기를 1년 이상 타국에 거주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폭이 넓은 개념이고 난민이란 어떤 이유로든 박해를 피해 모국을 떠난 이들을 가리키는 비교적 […]

20181021 믿음이 증명될 때 / 왕상 1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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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7:1-16/믿음의 증명될 때 181021 주일설교 엘리야1 돌보시는 하나님 1974년 중국 허난성에서 어머니의 꿈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여 기적적으로 아버지의 폐암이 치유되는 것을 목격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16세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책 ‘하늘에 속한 사람’의 저자이며 후에 윈 형제라고 불린 중국지하교회 지도자 리우전잉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치유된 후 즉시로 비밀리에 전도집회를 시작한 어머니로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듣게 된 윈 형제는 자신이 직접 성경을 읽어보고 싶다고 어머니를 졸랐습니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 기간으로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성경은 불태우고 심하게 구타를 당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전 목사였던 노인의 집을 윈 형제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무려 20년의 옥살이를 했던 그 노인은 윈 형제에게 하나님께 성경을 달라고 기도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노인의 가르침대로 윈 형제는 하루에 밥 한 공기만 먹고 금식하며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달라고 네 달 이상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4시경 그 날도 성경을 달라고 엎드려 기도하던 윈형제는 수레를 끌고 힘겹게 양식을 구하러 어느 마을로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맞은 편에서 두 하인을 거느린 노인이 다가오더니‘배 고프지?’라고 하며 떡을 한 덩이 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 얼른 그 떡을 입에 넣었더니 갑자가 그 떡이 성경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 성경을 부둥켜안고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치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꿈인 것을 안 윈 형제는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엉엉 울었고 그 소리에 달려나온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이 미쳐간다고 생각하고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내가 다시 병에 걸려도 좋으니 제 아들이 미치지 않고 성경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얼른 달려간 윈 형제는 ‘혹시 떡을 가지고 오셨습니까?’라고 물었고 밖에서는 ‘그래, 자네에게 떡잔치를 해주려고 왔네.’하는 말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문을 여니 윈 형제가 꿈 속에서 본 두 하인의 모습을 한 두 사람이 붉은 봉지를 전해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봉지 속에는 진짜 성경이 들어있었습니다. 훗날 두 형제를 다시 만난 윈 형제는 그 날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 마을에 사는 한 늙은 전도자는 숨겨놓은 성경을 어느 마을의 소년에게 주라는 환상을 보고 믿을만한 신자 두 사람에게 그 일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 날부터 윈 형제는 배고픈 아이가 떡을 먹어치우듯 눈을 뜬 모든 순간에 성경을 쉬지않고 읽어내려갔고 잠이 들 때는 가슴에 꼭 품고 자며 성경을 삼켜버리듯 수도 없이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는 30여 차례나 감옥에 갇히고 풀려나기를 반복하는 등 모진 옥고를 겪으면서도 중국 가정교회연합운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의 굶주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키시고 돌보시고 먹이시고 구원하시는 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은 기원전 870년 경 갈라진 이스라엘의 남북왕국 중 북왕국 아합왕의 통치 중 일어난 일을 다룹니다. 아합왕은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며 바알숭배를 북왕국에 들여와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신전을 짓고 숭배하며 여호와의 법이 아닌 이방인들의 불의한 사회, 경제제도를 따라서 온갖 악행을 저지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와 이스라엘의 악행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시고 엘리야 선지자를 아합왕에게 보내어 몇 년간 비가 오지 않는 흉년을 겪으리라고 경고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 후 어떻게 됩니까? 이어지는 본문이 보여주듯,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혹독한 가뭄이 팔레스틴에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능력이 있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비와 이슬은 가나안 땅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우기에는 비가, 건기에는 이슬이 내려서 보리와 밀을 각각 수확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는 심판을 택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합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숭배한 바알신이 주는 것이 바로 비와 이슬이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비를 주관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을 통해 하나님은 비를 주관하는 것이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당신임을 보여주십니다. 비를 더 줄줄 알고 바알을 섬겼더니 바로 그 바알 때문에 비를 한 방울도 못 얻는 재앙을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곤경에 빠집니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리를 노예로 삼아 자유를 빼앗깁니다. 쾌락을 더 사랑하면 쾌락이 우리를 중독에 빠뜨려 진정한 행복을 빼앗깁니다. 사람에 집착하면 사람이 우리를 배신하여 큰 상처와 실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할 사랑과 헌신을 대신 받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를 감당하기 힘든 고통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들의 참된 행복과 평안을 위한 것입니다. 세상만물의 주인이시자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의인을 지키시는 하나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에게 그 말씀을 전합니다. 이에 엘리야에게는 어떤 일이 닥칠까요? 두 가지 생명의 위협 아래 놓입니다. 첫째는 아합이 그를 잡아죽이려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저주를 선포하는 선지자를 살려둘 왕이 아니었지요. 둘째는 엘리야 자신도 가뭄으로 말미암아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의롭게 사는 것이 쉬운 길을 보장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많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엘리야를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먼저 그릿 요단강 건너 동쪽의 그릿시냇가로 그를 피신시켜서 아합의 칼날로부터 숨기십니다. 거기서 시냇물을 마시고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떡과 고기를 아침, 저녁으로 먹음으로 가뭄으로부터 지키십니다. 아침, 저녁은 하루 두 끼를 먹었던 고대인들의 식사시간입니다. 인류가 하루 세끼를 먹은 것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떡과 고기를 아침, 저녁으로 먹는 것은 부자의 식단입니다. 서민들이 매끼니마다 고기를 먹을 수는 없지요. 엘리야를먹이시되 부족함 없이 풍요롭게 먹이신다는 말입니다. 시내가 말라 더 이상 마실 것이 없어지자 그를 이번에는 북쪽의 시돈지방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어 먹을 것을 공급받게 하십니다. 역시 아합의 위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에 순종하는 엘리야를 아합의 칼날로부터 보호하시고 극심한 가뭄 중에도 먹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 자들에게 가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못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이것이 우리가 의를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엘리야를 지키시듯 의를 위하여 살기로 결단하고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지켜주실 줄 믿고 끝까지 전진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그릿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북쪽 시돈의 한 지방인 사르밧의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엘리야는 그녀를 만나 떡과 물을 요청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아들과 함께 죽을 것이라 답합니다. 이 곳도 혹독한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상 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엘리야가 요구한 것은 대단한 헌신입니다. 떡이 남아돌아 대접하는 것과 마지막 남은 떡을 대접하는 것은 겉보기는 똑같은 떡 한 조각이지만 그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녀에게 떡 한 조각은 자신과 아들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걸 엘리야가 달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두렵겠지요. 그래서 엘리야는 그녀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날 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돈을 잃을까 두렵고, 건강을 잃을까 두렵고, 평판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상 17: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르밧 과부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이 약속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녀는 그 약속을 믿고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대접합니다. 그랬더니 과연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아 그녀와 아들과 엘리야가 오랫 동안 먹으며 가뭄을 이겨냅니다.  우리는 결말을 아니까 그녀의 선택이 쉬워보이지만 이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생명과 같은 것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선듯 내어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많이 가지고 그 중의 일부를 내어놓는 일도 얼마나 어렵습니까? 믿음은 이렇게 가장 절박한 때에 그 참됨이 증명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헌금하는 사람들을 보며 가장 많이 헌금한 여인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녀는 동전 두 개를 드렸을 뿐인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높게 평가를 받은 것은 그녀가 드린 것이 그녀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막 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의 믿음이 참됨을 증명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왜 우리 인생에 고난이 찾아옵니까? 거기에는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원인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분명 우리의 믿음이 참됨을 증명받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통해 그의 믿음이 참됨을 증명받았고, 욥은 가족과 재산과 건강을 모두 잃는 혹독한 시련을 통해서 그의 믿음이 참됨을 증명받았습니다. 믿음이 참됨을 증명받기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난을 통해우리의 믿음이 참됨을 증명받는 기회를 분명 갖게 됩니다.  살다보면 이제 꼼짝없이 망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마지막 남은 희망인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을 때가 틀림없이 옵니다. 그 때야말로 우리의 믿음이 참됨을 증명받을 때입니다. 그 때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자녀임을 확인하는 때입니다. 그 때야말로 우리가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때입니다.  그러한 때에 믿음으로 주님을 붙드는 자녀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약속대로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과 같이 또 사르밧 과부와 같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음으로 참된 구원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20181014 발을 씻기는 주인 / 요 1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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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3:3-17/발을 씻기는 주인 181014 주일설교   생명을 살리는 사명 뉴스를 통해 보셨겠지만 올 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 드니 무퀘게입니다. 올해 63세인 무퀘게는 콩고의 무장반란군에 의해 성폭행과 신체훼손을 당한 수 만 명의 여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하는데 일생을 보낸 인물입니다. 우리에겐 처음 알려졌지만 이미 인권과 평화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20여 가지 세계적인 상을 수상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

20180930 축복의 통로 / 창 4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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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7:7-10/축복의 통로 180930 주일설교 요셉20 전도자의 고민  이런 고민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지인을 전도하려는데 그는 저보다 훨씬 넉넉하고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데다 심지어 인간성까지 좋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전도해야 할까요?’ 또 이런 고민도 있습니다. ‘목사님, 제 삶에는 고난이 너무 많아서 전도하려다가도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렇게 사냐는 말을 들을까봐 겁이 납니다.’ 아마 전도하려는 분들이라면 이런 의문을 한 번쯤 가져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답을 드리면 될까요? 저보다 이 질문에 대해 훨씬 답을 잘 할 수 있는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많은 고난을 겪었으며 자랑할 만한 대단한 성취를 거둔 적도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굳게 믿고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는 바로 앞에 선 야곱입니다.    험악한 세월 지난 주에는 요셉의 형들이 바로를 만나고 고센에 정착하는 장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바로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바로를 만나게 한 후 이어서 아버지 야곱을 바로 앞으로 인도합니다. 바로 앞에서 보여준 야곱의 말과 행위는 앞선 전도자의 고민에 답을 줍니다. 바로가 나이를 묻자 야곱은 이렇게 답합니다.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30세는 장수의 복을 누린 것이 분명하지만 그의 아버지 이삭의 180세,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175세에 비하면 얼마 못 된다는 말이 과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 즉 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비해 더 많은 고난을 겪었다는 말입니다. 야곱은 집을 떠나 삼촌 라반의 집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가정생활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일찍 잃는 슬픔도 견뎌야 했습니다. 야곱의 고백은 성도의 삶이 고난으로부터 면제된 비닐하우스에서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예수 믿는 것이 우리를 온갖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소위 삼중복음으로 예수를 믿으면 영혼도 구원받고 몸도 건강하고 만사형통한다 즉 돈도 번다는 식으로 가르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과거 적극적 사고방식이 최근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이름을 바꾸어 전파되는 동안 교회에서도 소위 긍정의 복음이라는 메시지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를 믿음으로 성도가 이땅에서 받는 최고의 복은 성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은 종종 많은 고난을 동반합니다. 바울 사도가 제자들에게 한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고난을 겪느냐 않느냐는 성도들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구하며 살아가는지요? 성공을 구하는 성도가 아니라 거룩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나그네 길 야곱의 대답 중에 반복되는 단어가 눈에 뜨입니다. 그것은 나그네 길입니다.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은 조상들의 길도, 자신의 길도 모두 나그네 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정착한 삶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삶에 대한 이해는 야곱이 처음 가진 것이 물론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창 17:8) 내가 너(아브라함)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거류’라는 단어는 남의 땅에 임시로 머물러 산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임시로 머물러 살면서 그 땅이 영원한 기업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 그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창 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이삭)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 역시 그 땅에 거류하여 살았고 그 땅을 언젠가 차지하게 될 날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원주민들에게 신세를 지며 눈치를 보며 때로 설움을 당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이 그 땅을 자신들에게 주실 때가 오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야곱은 당대 최강의 제국 애굽의 왕 바로 앞에 아무 것도 없는 나그네로 섰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그네로 살면서도 주인처럼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바로를 두번이나 축복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에 대한 또 하나의 교훈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동시에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전히 회복되어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이 땅을 상속받을 자들로서 이 땅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며 의와 사랑의 질서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성도들의 삶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나그네와 세상의 회복을 기다리는 상속자의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축복의 통로 요셉의 고백뿐 아니라 그의 행동도 인상적입니다. 그는 바로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두 번이나 그를 축복합니다.  (창 47: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 (창 47: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축복, 복을 빈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바로를 위해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빈다는 것은 야곱이 이미 그 복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자신도 받지 못 한 복을 남이 받기를 빌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을 보면 야곱의 이런 태도가 아이러니합니다. 야곱은 지금 자기 땅도 한 평 없는 나그네로 바로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면 흉년으로 굶어죽을 처지의 무기력한 노인입니다. 반면 축복을 받는 입장의 바로는 당대 최강 제국의 최고권력자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복을 빌어야한다면 이 최고권력자가 이 떠돌이 노인에게 복을 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바로는 야곱과 그 가족을 애굽에 받아들이고 살 땅을 주는 등 은혜를 베풉니다. 아마 야곱이 축복할 때 바로는 조금 어이가 없어 웃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닌 야곱은 왜 조금도 주저함 없이 두 번이나 바로에게 복을 비는 것입니까? 그것은 야곱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주실 땅의 약속과 더불어 자신과 후손들이 세상 모든 민족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입니다.  (창 12:3) 너(아브라함)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는 애굽도 예외가 아닙니다. 야곱이 지금 처지가 얼마나 곤궁한지, 바로가 얼마나 부유한지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을 복주기를 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실제로 야곱은 그 아들 요셉을 통해 애굽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창 39:5) 그(보디발)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보디발의 집이 요셉 때문에 여호와의 복을 받았고 이것은 요셉이 갇힌 감옥에까지 이어지고 더 나아가 애굽 전체에 미칩니다.  (창 41: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 (창 41: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애굽이 이 혹독한 흉년의 구원을 받고 주변 국가들과 달리 오히려 도약할 수 있었던 비밀도 바로 요셉을 통해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야곱의 믿음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복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을 통해 결정적으로 성취됩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상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주시는 참된 복의 전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전도와 선교에 나설 때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고 봉사할 때 요셉처럼 세상 모든 민족에게 은혜를 끼치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부유하냐, 얼마나 지위와 권세가 있느냐, 얼마나 배우고 뛰어나냐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복은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우리는 그 통로가 될 뿐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우리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구원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축복하십니다. 야곱은 바로 그런 믿음으로 가난하고 무기력한 떠돌이 노인이었지만 당대 최강의 권력자 앞에서 그를 축복했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세상을 축복하는 사명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드립니다.

20180923 고센 땅에 살다 / 창 46:31~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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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6:31-47:12/고센 땅에 살다 180923 주일설교 요셉19 왜 이곳인가 저는 12전 LA로 들어와서 3년 후 뉴저지로 왔습니다. LA로 들어온 이유는 그 곳의 교회 청년부에서 저를 청빙했기 때문이고 뉴저지로 건너 온 이유는 우리교회에서 청빙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미국 이민 올 때 어느 지역으로 들어오셨는지요? 그 때 무엇이 그 곳을 선택하도록 만들었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직장이나 비지니스를 해야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