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tagged with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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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죽어도 족하니라 / 창 46: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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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6:27-30/죽어도 족하니라 180916 주일설교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1997년에 출간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뉴욕타임즈에서 205주 동안, 약 4년인데요, 비소설분야 베스트셀러에 머물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가던 모리 슈워츠 교수를 14주 동안 그 제자인 기자 미치 앨봄이 매주 화요일 만나며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죽어가는 어느 교수의 삶과 죽음에 관한 […]

20180909 이민의 땅을 향하다 / 창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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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6:1-7/이민의 땅을 향하다 180909 주일설교 요셉17 이민의 긴장 예전에 한 교우분과 대화 중에 미국생활이 어떠냐고 여쭤보았더니 쉽지만은 않다고 답하셨습니다. 그럼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했더니 다 정리하고 와서 돌아가기도 어렵답니다. 미국 올 때의 기대한 만큼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어서 이제는 좋으나 싫으나 여기에 적응하고 살아야지 어떡하겠냐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 혹은 남미 […]

20180902 다툼이 없는 세상 / 창 45: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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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5:14-28/다툼이 없는 세상 180905 주일설교 요셉15 시기의 무서움 유대인들의 지혜문서인 탈무드에 천사를 만난 장사꾼의 이야기를 들려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천사가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당신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단 조건이 있는데, 당신과 경쟁하는 옆집 장사꾼이 당신이 얻은 것의 두 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럼 내가 100만 불을 받으면 그는 200만 불을 받게 된단 말입니까?” “물론이지요.” […]

20180826 멀고 험한 화해의 길 2 / 창 4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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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5:1-13/멀고 험한 화해의 길2 180826 주일설교 요셉15 회개 없이 용서가 되는가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남북회담 직후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남한사람들이 북한정권에 대한 오래된 원한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 후 교우들이 악수하며 나가실 때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물어오셨습니다. ‘하지만 목사님, 김정은은 회개하지 않았잖아요?’ 네, […]

20180819 눈을 열어주소서 / 왕하 6: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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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6:8-20/눈을 열어주소서 180819 주일설교 잘 안 믿어집니다 예전에 20년이 넘게 신앙생활을 하신 교인과 상담을 했습니다. 대화 중에 아무래도 이 분이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계신가 의심이 들어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어 보았습니다. ‘성도님,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이 분은 그래도 정직했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더니 ‘목사님, 저도 믿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목사는 이런 답을 심심찮게 듣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여쭈어 보지요. ‘믿기 위해 무엇을 해보셨습니까?’ ‘뭐, 교회도 가보고 이것 저것 해 보았는데 잘 안 믿어져요.’ ‘그러면 성경을 공부해 보셨나요? 기도는 어떻게 해보셨습니까? 예수님에 대해 배워보신 적이 있나요?’ 몇 가지 질문을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내와 겸손을 가지고 구체적인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려니와 그저 교회에 계속 다니다보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이런 태도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둘째 어떻게 믿음을 얻는지 모릅니다. 셋째 믿음의 장애물이 있다는 것도 잘 모릅니다. 오늘은 본문말씀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보려 합니다. 먼저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이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엘리사 선지자를 잡으러온 아람군대를 물리치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믿음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먼저는 믿음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람은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내내 갈등관계에 있던 주적이었습니다.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왕을 잡기 위해 여러 차례 매복작전을 펼쳤는데 이를 번번이 선지자 엘리사가 꿰뚫어보고 이스라엘왕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매번 매복작전이 실패하는 이유가 엘리사 때문인 것을 안 아람왕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특공대를 파견합니다. 엘리사가 머물던 도단성을 특공대가 밤새 포위하고 아침에 일어난 사환은 이를 보고 겁에 질립니다. 15절입니다.  (왕하 6: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꼼짝없이 잡혀 죽게생겼습니다.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겁에 질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늘 […]

20180812 돈으로부터의 자유 / 마 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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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9-34/돈으로부터의 자유 180812 교회창립/광복절기념주일 두려움과의 대화 오늘은 광복 73주년, 교회창립 46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조국 한국에 광복을 주시고 우리 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설교는 그러나 기념주일에 맞춘 것은 아닙니다. 먼저 영상을 하나 보시지요.  영화배우 짐 캐리가 주연한 에이스 벤츄라, 라이어 라이어, 브루스 올마이티, 에디 머피의 너티 프로페서, 로빈 윌리암스의 패치 아담스 그리고 에반 올마이티 등 메가히트 휴먼코미디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같은 감독 영화란 점입니다. 할리우드의 스타감독 톰 새디악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영화가 빅히트를 기록할 때마다 그는 다른 헐리우드 감독들이 그러하듯 연봉협상을 통해 마침내 한 편에 수백만 불을 받는 스타감독이 되었습니다. 대저택에서 고급차를 여러 대 세워놓고 자가용비행기를 타고 하와이에서 몇 달씩 휴가를 보내는 삶을 마침내 누리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던 그였지만 어느날 산악용 자전거를 타다가 뇌진탕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더욱 진지하게 그 의미를 묻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이 망가진 세상이 만들어놓은 덫, 인정받지 못 하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덫에 걸린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영화 한 편에 수백 만 달러를 버는 동안 자신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자신을 돕는 스텝들은 매일매일 생계를 걱정해야한다는 것이 공정하지 못 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망가진 세상을 고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을 한 그는 자신의 대저택과 자가용 비행기, 고급 자동차 등을 모두 처분하여 구호단체에 기부하고 이동식 주택으로 옮겨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삶을 살며 비영리영화사를 설립하여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는 더 성공하고 더 소유하고 더 부유해지지 않으면 큰일날 것이라고 위협하는 자기안의 두려움과 끊임없이 싸우며 깨달은 바를 ‘두려움과의 대화’라는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대부분은 이 사람처럼 큰 돈을 벌지는 못 할 것이고 또 이 사람처럼 전 재산을 처분하자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이 사람이 돈의 압박으로부터 얻은 자유를 우리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으로부터의 자유 성경적재정교실을 교인들에게 권하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묻습니다. ‘이 과정을 공부하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니요. 그럼 뭘 배우나요?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돈 때문에 울고 웃고 돈 때문에 때로 자유와 목숨까지 희생시킵니다. 이정도면 돈이야말로 인간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24절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하나도 과장이 아닙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은 주인자리를 놓고 하나님과 경쟁합니다. 왜 우리는 돈의 노예로 전락할까요? 돈에 대한 잘못된 두 가지 태도 때문입니다.   돈을 쌓으려는 것 첫째는 돈을 쌓아두려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우리 모두 돈을 더 많이 쌓아두고 싶습니다. 특히 현대세계에서 가장 발달하고 살벌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는 노골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쌓고 더 쓰는 삶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옷에 스는 좀과 동전에 생기는 동록과 사기꾼, 도둑을 막기위해 우리는 돈도 더 써야 하고 신경도 쓰고 괴로움도 겪어야 합니다. 냉장고에 넣고 잊어버려 얼린 음식을 버려야 하고 쓰지도 않은 채 창고에 넣어두었다가먼지쌓인 가구와 가전제품과 낚시도구와 골프채를 내버려야 합니다. 인류의 절반이 빈곤상태에, 그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 세계에서 말입니다. 돈을 쌓아두기 위해 우리는 이웃들과의 평화를 희생시킵니다. 가족과 남남이 되고 친구와 원수가 됩니다. 하지않아도 되는 많은 고생을 합니다. 디모데전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럼 어떻게 하면 돈이 주는 많은 근심과 고통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까? 20절입니다.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하여 쓰는 것입니다. 그럼 톰 새디악처럼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럼 가족은 어떻게 돌보나요? 그런 걱정은 필요없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구제의 1순위는 바로 가족입니다. 성경도 성도의 첫째 의무를 가족을 돌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가 돈을 하늘에 쌓으면 우리의 마음이 비로소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립니다. 21절입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 마음에 땅에 머물면 온갖 근심과 고통에 짓눌립니다. 하늘에 머물면 평화와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의 돈을 하늘에 쌓음으로 그 마음이 하늘에 머물고 그래서 하늘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

20180729 하나님을 보여줘 / 롬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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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0/하나님을 보여줘 180729 주일설교 신을 보여줘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은 기행과 과격한 언행으로 이미 유명합니다만 이번 달 8일에는 공식석상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로 또 한 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신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셀카를 보여준다면, 또는 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즉시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국민의 80%가 카톨릭교도인 필리핀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사과를 하였습니다만 […]

20180722 우시는 하나님 / 창 43: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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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3:26-34/우시는 하나님 1800722 주일설교 요셉14 고통받는 인생 지난 주에 정말 가슴 아픈 뉴스를 들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인 17일 한국 경기도 동두천에서 5살 여자아이가 어린이집 통학용 밴에 갇혀 있다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등교를 위해 탄 밴에서 인솔교사가 잠든 아이를 확인하지 않고 내려 문을 잠그는 바람에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폭염 속에서 7시간을 갇혀 있다가 사망한 채 뒤늦게 발견되었습니다. 안전벨트도 풀지 못 한 채 열기 속에서 얼마나 괴로웠으면 아이 몸이 다 뒤틀린 채 꺾여있었다고 합니다. 아이 외할머니가 방송 인터뷰를 하는데 아이 엄마는 계속 울부짖으며 뒹굴다가 실신하기를 반복해서 장례도 치르지 못 할 상황이고 외할머니도 한 주 전에 아이와 텃밭에 나가 나물을 캐는데 재미있다고 뛰어다니며 깔깔대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 자신도 죽고 싶다고 합니다. 불과 2주 전인 지난 5일에도 경상남도 의령에서 3살 외손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려던 할아버지가 아이를 차에 둔 것을 잊고 출근하는 바람에 4시간 동안 방치된 아이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던 터라 더 기가 막혔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부주의해서 그런 것일까? 미국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산호세주립대의 연구팀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1998년부터2017년까지 20년간 712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차내에 갇혀 열사병을 목숨을 잃었습니다. 1년에 35명, 한 달에 3명, 열흘에 1명 꼴입니다.  목숨을 잃은 아이들에게도 비극이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는 또 어떻게 살아갈까요? 손주를 죽게 만든 할아버지는 아들, 며느리의 얼굴을 어떻게 보고 남은 생애를 살아갈까요? 이런 일은 인간의 미련함과 부주의함, 어리석음으로 겪는 고통과 불행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이웃의 잘못으로 고통을 주고받으며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그런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은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 소망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베냐민 때문에 울다 계속해서 요셉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 창 43장 후반부는 요셉이 형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점심 만찬을 대접하는 내용입니다. 형들이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만찬을 즐기는 중에 베냐민에게 특별하게 대접하는 요셉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베냐민은 영문도 모른 채 융숭한 대접을 받습니다. 먼저 베냐민을 생각하는 요셉의 마음이 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