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Page 89)

Sermons (Page 89)

20180325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5 – 마음 / 요 12:9~19

요 12:9-19/어떻게 구원을 받는가5- 마음 180325 종려주일 생명의 근원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주님을 환영한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 지난 월요일부터 부활주일까지의 일주일은 고난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을 우리 교회는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와 성금요기도회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교우 여러분도 함께 하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두 종류의 무리를 만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환영하러 나온 큰 무리의 군중입니다. 둘째는 그 와중에도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엿보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 무리입니다. 이 두 무리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4주간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해왔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과 예수님의 공로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도는 회개와 믿음을 요구받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와 믿음이 시작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 곳은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와 죽이려는 무리를 가르는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생명의 길도 죽음의 길도 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 마음의 중요성은 성경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입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이야말로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이며 의와 심판의 갈림길입니다. 그럼 어떤 마음은 구원에 이르고 어떤 마음은 멸망에 이를까요? 먼저 멸망에 이르는 마음을 살펴봅시다.    완고한 마음 멸망에 이르는 마음에 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가르침입니다.  (렘 18:12) 그러나 그들(유다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頑惡)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 (렘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으리라.’ 완악한 마음, 이것이 멸망에 이르는 마음입니다. 완악한 마음은 두 가지가 결합한 마음상태입니다. 첫째 완고한 즉 고집센 마음입니다. 둘째 악한 마음입니다. 고집 센 마음이란 진리를 믿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만을 고집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 백성들은 그들이 고침을 받을까봐 즉 자신들이 믿는 바와 원하는 바와 생활방식을 바꾸어야할까봐 진리를 듣기를 거부하는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왕이고 주인인 상태를 바꾸어야 할까봐 주님 앞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상태를 완악하다고 예수님은 꾸짖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도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현재 상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말씀은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고집센, 완고한 마음이요, 완악함의 첫째 요소입니다.   악함 마음 완악한 마음을 이루고 있는 둘째 마음은 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보다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의보다 이가 더 중요하기에 이를 위해 의를 희생시키는 일을 감히 합니다. 이것이 곧 악한 일이 됩니다. 본문 9절 이하입니다.  (요 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